[u미디어포럼]컵라면도 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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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통신회사의 한 임원이 IPTV와 디지털케이블TV를 컵라면과 끓여먹는 라면에 비유해 화제가 됐다. 그 임원은 “IPTV는 새로운 서비스인데 디지털케이블TV와 같이 방송법을 적용하는 것은 마치 컵라면을 끓여먹는 라면과 같이 냄비에 끓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발상은 재미있었지만 IPTV와 디지털케이블TV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비유치곤 적절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컵라면과 끓여먹는 라면은 분명 차별화된 소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라면이라는 점은 같지만 조리과정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컵라면과 끓여먹는 라면의 생산 및 유통에 있어 규제받는 법규는 다르지 않다.

 이는 다 같은 케이블TV지만 지역별로 소비계층과 연령층이 다른 점 때문에 다른 채널 상품과 가격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방송법상 동일한 규제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IPTV와 디지털케이블TV 역시 전송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컵라면이나 끓여먹는 라면이나 소비자가 라면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변함이 없듯 영상 콘텐츠를 비롯한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수용자들은 같은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

 그날 콘퍼런스에서 사회자는 참관자들을 대신해 컵라면 비유를 재미있게 든 그 임원에게 재차 질문했다. “그렇다면 IPTV가 컵라면에 속하는지 아니면 끓여먹는 라면에 속하는지를 밝혀 달라”고 했지만 시원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전자기기의 호환성에 따라 미디어서비스를 어떤 단말기로 사용해 보느냐 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케이블TV를 컴퓨터에 연결해 모니터로 보거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기를 TV에 연결해 집에서 시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측면에서 어떤 라면이든 식품위생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IPTV와 디지털케이블TV 서비스가 다르다는 생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통신업계의 고집이 IPTV 서비스를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가 됐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했으면 좋겠다. 최근 몇 년간 논란이 있어왔지만 IPTV와 지금 상용 서비스 중인 디지털케이블TV 상품을 모두 체험해 본 사람들은 소비자 처지에서 동일한 서비스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IPTV 시범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77%가 기존 유료방송과 차별점을 느꼈다는 결과에 연연하는 등 여전히 방송규제를 피해 보기 위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통신회사들이 추구하는 지상파방송 등 실시간 방송이 포함된 서비스였다면 디지털케이블TV 상품을 접해 본 시청자를 대상으로 물었을 경우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케이블TV는 전국 77개 방송권역에서 지역방송국을 운영한다. 권역의 과도한 통합을 방지하기 위해 한 사업자가 20%의 권역 이내에서만 사업을 할 수 있다. 이는 방송의 지역성과 지역문화를 지키기 위한 제도를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지, 케이블방송국들이 전국서비스를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통신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해 오던 것을 규제환경이 전혀 다른 방송서비스에 그대로 적용시켜 보겠다는 사업자 편의적 발상은 ‘특권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 방송·통신 융합시대라 한다. 방송도 산업화·디지털화 과정을 겪으며 발전해 가고 있으며 통신도 방송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 각 산업의 성장배경이 다르고 규제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곳곳에서 갈등이 일기도 한다. 방송산업도 시대에 맞춰 좀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은 지금이라도 ‘컵라면도 라면’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방송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 책임있는 생각을 시작해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 방송과 통신이 융합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하웅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매체사업지원국장 hwjung@kc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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