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과학기술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예를 들어 좌중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부모를 협박할 때 ‘엄마, 아빠! 저 공대(이공계 대학) 가겠습니다’라고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부모 세대한테는 이런 말이 대단한 협박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부모의 골을 올리기엔 그만이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부모들의 지상 최대의 목표는 자식을 법대나 의대에 진학시키는 것이었다. 지금은 대학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공대에 대한 편견은 어느 정도 가신 것 같다.
정부는 미래 꿈나무들이 이공계에서 꿈을 펼치게 하기 위해 과학영재교육원을 비롯해 과학영재학교·과학고를 만들었고 대통령 과학장학생, 이공계 국가 장학생, 석박사 과정 연구장학생 제도도 만들었다. 이공계·과학기술계 종사자에 대한 처우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예산도 해마다 큰 폭으로 늘려 올해에는 9조원에 육박했고 내년엔 10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9조8000억원(정부 요구안)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옛날에는 영토의 넓이로 국가경쟁력을 측정했는데 요즘은 과학기술의 수준으로 국력을 측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과학기술·이공계 예찬론을 편다.
하지만 국제 과학(수학·물리·화학·정보·생물·천문) 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학생들이 공대를 거쳐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길을 가지 않고 진로를 법률가나 의사 쪽으로 선택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자발적으로 이공계에 투신해서 일할 만한 인식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아직 정부의 이런 노력이 국민의 정서에 깊이 와닿지 않은 것 같다.
최근 과학기술부와 과학문화재단 등이 과학을 일상생활·예술·사회·국회 등 각계와 접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조원에 이르는 R&D 집행과 더불어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 과학을 접목하는 문화확산 노력이 체계화되고 지속적으로 유지·강화되면 사회에 만연된 이공계 기피 현상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문정차장·정책팀,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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