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공정(水利工程)·무선전자·지질구조·전력·자동제어·전기공정·동력·전기·압력가공.’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대학시절 전공과목이다. 국가주석, 전인대상무위원장(국회의장), 총리, 부총리 등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상무위원단 전원이 이공계 출신이다. 이들 4세대 지도자집단의 국가경영 철학은 ‘과학적 발전관’이다.
유구한 공맹(孔孟)의 숭문(崇文)전통을 딛고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도약해 지금 무섭게 매진중인 중국에서 ‘최고 지도부 전원 이공계’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수력발전을 다루는 수리공정학을 전공한 후진타오 주석 앞에서 세계 최대 댐을 건설중인 중국싼샤댐개발총공사의 책임자가 어찌 공정을 허투루 보고할 수 있겠는가.
믿을 만한 관련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최고지도부의 학력 구성으로 미루어 추측하건대 적어도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이공계의 공직 진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에 이공계 비중이 너무 작다’는 지적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참여정부 들어 과학기술 인력 확충을 위한 균형인사 차원에서 이공계의 공직 진출을 열심히 추진해 왔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중앙인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직업공무원의 최고위 직급인 1급은 기술직·이공계 임용률이 2004년 24%에서 2005년 21.62%로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얼마 전 호기심에서 이공계 출신 전·현직 정무직 공무원(장차관) 1000여명의 명단을 뽑아 이공계 출신을 조사해봤더니 50명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이공계 출신 고위직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공직에서 이공계를 배려하고 또 필요할 경우 우대하는 것은 길게 보아 우리 정부의 효율 향상, 나아가 사회 전반의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공계를 키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주요 기업에서는 이미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가 더 많다.
무조건적인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공계 출신이 인문사회계 전공자에게 뒤지지 않는 경쟁력 있는 자질을 갖췄을 때 비로소 그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 전공자 스스로도 우물 안 개구리식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인문학적 교양을 넓히는 등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은 필수다. 고위 공직자들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의 화성(華城)은 인문학자 정약용이 정조에게 지어 바친 ‘성설(城設)’을 설계도로 해 건축됐다. 학문이나 경륜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이공계냐 아니냐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포병이니 보병이니 따지던 군인들의 병과(兵科)는 당사자가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하는 순간 아예 사라져 버린다.
이공계 출신 고위 공직자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 정부가 각별히 노력해야 하는 데는 여러 이유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우리나라 공직사회 전반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큰 목표로 귀결된다. 이공계의 과학·합리적 성향과 비이공계의 인문·사회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조화시키면서 두 집단 간의 발전적 경쟁을 유도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공직사회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체질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김창곤(한국정보사회진흥원장) ckkim@n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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