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성공의 타성

전국을 휩쓸고 있는 불법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보도 홍수 속에서 정작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소니와 델이 노트북PC용 배터리를 리콜 조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작은 지난 15일. 델과 소니가 410만개에 이르는 노트북PC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리콜한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에게 “역시 세계적인 기업은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리콜비용만 해도 ‘2000억∼3000억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객들에게 배터리를 교체해 주겠다고 나선 그들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고작 1주일도 안 돼 이면의 일그러진 모습이 드러났다.

 외신에 따르면 소니의 릭 클랜시 대변인은 지난 21일 “작년 10월과 올해 2월 배터리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델과 협의했고 배터리 생산과정을 바꿨다”며 “당시에는 대규모 리콜이 필요한지 판단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델의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배터리 폭발로 화재가 발생한 직후 소니와 공동조사에 착수했다”는 발표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4일에는 애플이 미국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9건의 노트북PC 화재 발생 신고 후속대책으로 180만대에 달하는 자사의 노트북PC용 소니 배터리 리콜까지 발표했다.

 단순히 보면 소니라는 세계 배터리 공급 1위 업체와 세계 PC 1위 업체가 고객의 안전을 볼모로 6개월 이상 문제점을 숨겼다가 최악의 순간에 어려운(?) 결단을 내린 셈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세계 1위 업체들의 신뢰성에 대한 리콜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인텔의 앤디 그로브 전 회장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유명한 책에서 언급한, 이른바 ‘성공의 타성’에 대한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한창 잘 나가던 지난 1994년 고객이 발견한 펜티엄 프로세서 부동소수점장치(FPU) 오류에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발목 잡힌 경험이 있다. 6주간 5억달러에 달하는 결손을 치르고서야 간신히 소란을 해결했다. 자체적으로 “90억번만에 한 번씩 나눗셈에서의 근사값 오류가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객을 무시한 결과였다.

 이후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경영자들은 지금 본인이 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왔기 때문에 현재의 자리까지 왔다. 그들은 시간을 거듭해 그들의 힘으로 통솔하는 법을 배워왔다. 그리하여 스스로 경력을 쌓아왔다. 특히 승리자로서 효과를 보았다…”며 성공의 타성에 매운 반성을 쏟아낸다.

 소니와 델이 결국 10개월 만에 리콜을 선언한 것 역시 ‘우리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만심과 방심의 소산과 다름없다.

 열정과 창의성으로 명성을 날렸던 소니의 창업자들이었다면 첫 사건 발생 시 사죄와 함께 관련 대책을 발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객을 안심시키고 결과적으로 품질을 개선하고 더 큰 신뢰성을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니와 델의 리콜 이면까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더욱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을 놓쳐서 낭패를 본 이 ‘성공의 타성’ 건을 경계로 삼자고 말하고 싶어서다.

 그로브 회장의 ‘성공의 타성’에 대한 지적은 이렇게 이어진다. “… 주위환경이 변해 낡은 기술과 힘이 제 기능을 못할 때면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과거에 매달리게 마련이다. 마치 눈앞에 보기 싫은 무엇이 있을 때 눈 감고 100을 세면 그게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믿는 어린아이처럼 주변의 변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