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용산을 왜 살리죠

 ‘용산2010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본지 기사(8월 7일자 1·3면)가 처음 나갔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한 번 바꿔보겠다고 나선 상인들을 격려하기보다는 ‘왜 살려야 하지’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통로 양쪽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구멍가게들, 툭하면 고객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좁은 통로 등 상가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호객행위와 바가지 씌우기 등 용산 상인들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용산전자단지를 살리는 유일한 방안은 상가를 없애고 공원으로 만드는 길밖에 없다는, 점잖지만 용산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못박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고객들에게 철저히 불신받고 있는 상가가 지금까지 어떻게 유지돼왔나 궁금할 정도다.

 비난의 당사자인 용산 상인들 스스로 이대로는 안 된다며 용산전자단지 살리기에 나선 이유를 충분히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용산의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서는 대형 양판점, 인터넷 쇼핑몰이나 TV홈쇼핑 등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는 온라인 유통, 여기에 발품을 팔아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비싸게 사더라도 편안하게 대접받고 제품을 구입하려는 청소년층의 구매 성향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결과다.

 과거야 어쨌든 용산전자단지 4만여명의 상인이 머리를 맞댔다. 일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인 용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상가를 살리겠다는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기보다는 결실을 보도록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용산전자단지는 국내 전자산업의 오늘을 있게 한 토대였으며, 앞으로 더 많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수많은 젊은이가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용산에 몰려들었다. 용산 상인 대부분은 개인사업자다. 1만2000여개의 상점은 곧 1만여개의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가장 효과를 발휘할 만한 곳도 좁은 지역에 기업이 대거 밀집돼 있는 용산전자단지다. 자금이 없어 마케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중소 제조업체에 용산은 자신이 개발한 신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일 수 있는 판매채널이기도 하다. 용산의 회생은 이처럼 국내 전자산업의 토대를 쌓았지만 IMF 이후 사라져버린 중소 전자업체들의 재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또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국 전자유통단지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국 의류도매상들이 동대문으로 모이는 것처럼 KTX로 인해 용산을 중심으로 전국 전자상권을 단일화해 공동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용산은 과거 일본의 아키하바라처럼 IT강국인 대한민국을 구체적으로 내보이는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용산전자단지에서는 연간 약 10조원을 웃도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대기업 제품부터 중소기업 제품, 국내 기업에서 외국 기업의 제품, 부품에서 완제품 그리고 액세서리까지 없는 게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상가는 지저분하고 상인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전자제품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발품만 곁들인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용산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기대감이 바로 용산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불씨다. 거창한 구호나 생색내기보다는 오늘 상가를 방문한 고객들이 어제와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용산은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용산을 왜 살리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상가 운영 주체인 상인들이 해야 한다. 용산2010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이 프로젝트를 상인들 스스로 만들어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