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퇴직인력의 사회경제적 의미

일본 사회가 ‘단카이 세대(團塊世代)’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부터 1951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를 지칭하는 단카이 세대는 그동안 일본사회의 중추세력으로 활동했으나 조만간 현역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다. 정부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사회보장비용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스럽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카이 세대의 부재가 산업계나 과학기술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젊은 세대의 제조업 기피와 맞물려 일본 경제의 추진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조업 현장은 이미 태풍권에 들어가 있다. 일본 제조업 종사자 수는 대략 1150만명. 이중 12.6%가 55∼59세의 단카이 세대다. 이 세대에 속한 숙련 노동자가 한꺼번에 은퇴한다면 제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다. 장인이 존중받는 일본의 전반적인 풍토를 고려할 때 단카이 세대의 부재가 일본 사회에 몰고 올 파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지자체들이 최근 단카이 문제 해결에 길잡이로 나섰다. 단카이 세대가 생산 또는 개발 현장에서 축적한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능을 젊은 세대에 전수하는 ‘기능계승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도치기현과 야마나시현은 젊은 세대가 숙련 기술자로부터 기계조립·금속 절삭 및 가공 노하우를 배우는 ‘마이스터 기능숙(技能塾)’ 등 교육과정을 연내 개설한다. 효고현은 2008년 개교를 목표로 기능인재대학 설립을 추진중이다. 기타규슈시는 기능장이나 숙련 노동자에 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며 야마가타현은 기업진흥공사를 통해 퇴직한 숙련 노동자를 중소기업들에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 같은 지자체의 노력은 단카이 세대의 노하우와 현장 경험을 젊은 세대에 자연스럽게 전승하고 제조업 이탈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다.

일본 지자체의 이런 노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일본과 유사한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제조업 및 이공계 기피, 40·50대 숙련 기술자 및 연구자들의 조기 퇴진 등 문제가 이미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장·노년층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장시키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최근 과학기술부는 국가출연 연구기관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퇴직 과학기술자를 ‘테크노 닥터’로 선발, 중소기업에 파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쪽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대중소상생협력재단은 대·중소기업 상생정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의 퇴직인력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LG전자는 퇴직 직원을 대상으로 협력업체 파견 프로그램을 운용중이다. 여러 곳에서 퇴직자 관련 프로그램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앞선 세대의 소중한 경험과 기술이 젊은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산업계와 연구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국가 경제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이들 제도가 전시행정이나 겉치레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로 생산 또는 개발 현장에서 밑거름이 되고 개론적인 수준이 아니라 각론 수준에서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왔으면 한다. 굳이 일본 지자체가 추진중인 기능계승사업을 거론할 필요는 없다. 더욱 구체적으로 생산·연구 현장에서 필요한 핵심기술이 무엇이고 어떤 기술과 연구자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퇴직한 숙련 기술자와 전문 연구자의 DB와 네트워크도 잘 갖춰졌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적인 인적 자원들이 산업·과학기술 현장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인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경제과학부 장길수 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