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또 한 번 큰일을 해냈다. 지난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토고에 극적인 2 대 1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52년을 기다려 온 월드컵 원정 첫 승의 쾌거를 일궈낸 것이다.
이날 경기를 지켜보면서 며칠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스위스 월드컵의 숨겨진 영웅들에 대한 뒷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 대회다.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누르고 본선행 티켓을 따낸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하지만 이 대회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무엇보다도 스위스 월드컵은 한국 대표팀의 투혼(鬪魂)을 전 세계에 보여준 대회였다.
당시 스위스 월드컵을 통해 탄생한 진정한 영웅은 한국을 9 대 0으로 대파하며 월드컵 역사상 최대 골차로 승리한 헝가리도, 그런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서독도 아니었다. 스위스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낸 팀은 한국의 태극전사들이었다. 경기 직후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은 불과 1년 전 전쟁을 겪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대표로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팀”이라고 소개하자 관중이 모두 일어나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스위스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은 그야말로 최강 중 최강이었던 헝가리를 상대로 단 12명의 선수만이 경기에 임해야 했다.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12명의 선수가 그것도 경기 시작 전 불과 10시간 전에 겨우 도착한 탓에 시차 적응은 고사하고 여행 피로도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12인의 태극전사는 90분 내내 투혼을 불태웠다. 골키퍼를 포함해 선수 3명이 경기중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지만 교체 선수가 없던 까닭에 그들은 정신력 하나로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지켰다. 비록 경기에선 대패했지만 기립박수를 받을 만한 진정한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오는 19일 16강 진출을 위해 프랑스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 태극전사들이 승패를 떠나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4800만 국민과 해외 동포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준 23명의 태극전사에게 다시 한번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디지털문화부·김종윤차장@전자신문, j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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