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출시된 두 가지 통신상품이 화제다. LG텔레콤의 ‘기분존’과 SK텔레콤의 ‘힐리오’가 주인공이다. ‘기분존’은 이통시장에서 ‘막내의 설움’을 곱씹고 있는 LGT의 작품이다. 힐리오는 버라이즌이나 도코모보다 낫다는 최강 SKT의 첫 미국 진출 야심작이다. 둘 다 틈새시장을 겨냥했지만 LGT는 바닥에서 위로 치고 올라간다. SKT는 아예 처음부터 프리미엄 시장을 정조준했다.
‘가출한 집전화’의 티저 광고로 시작된 ‘기분존’은 LGT의 ‘오늘’을 보여준다. ‘실력’이다. 집에서 휴대폰을 사용해도 유선전화보다 값싼 요금을 들고 나왔다. 이미 목에까지 꽉 찬 이통시장이 아닌 유선시장을 편리성과 요금으로 뚫고 들어가는 상품을 개발했다. SKT도 아니고 제집 지키기에 바쁜 LGT의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충격이다. 남들과 똑같은 서비스와 상품으론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독신자·학생·신혼부부 등 가정에 유선전화를 놓을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을 벤치마킹했다. 휴대폰으로 유선전화에 1시간 동안 통화할 경우 전화요금은 6480원이지만 기분존 서비스를 이용하면 780원에 불과하다고 선전한다. SKT는 물론이고 KTF, 심지어 KT조차 ‘기분존’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LGT로선 보안을 유지한 채 새로운 컨셉트의 상품을 선점했다. 파괴력 검증 단계는 아니지만 KT 실적 발표장에선 ‘기분존’의 영향력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LGT는 상품개발력이라는 ‘실력’을 과시한 셈이 됐다.
SKT는 어스링크와 합작한 힐리오를 론칭했다. 미국 진출은 꿈이었고 진정한 역량의 시험대다. 양사는 4억40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SKT답다. 더욱 ‘SKT스러운’ 것은 다짜고짜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힐리오 홈페이지에는 ’히어로(팬택)’가 275달러, ‘킥플립(브케이)’은 250달러로 선보이고 있다. 월정 사용료는 85∼135달러에 이른다. 미국 휴대폰 사용자 가운데 10∼15%만이 100달러 이상의 단말기를 사용한다. 월 평균 이용료 역시 50∼60달러가 대부분이다. 힐리오는 ‘부자들을 위한 상품’이다. 당연히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최고급이다. 한국에서 검증된 무선 인터넷 솔루션과 마이스페이스 등 현지 최강의 웹 서비스가 결합됐다. 고소득 전문직, 부유한 디지털 키즈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사용한다고 해서 벌써 유명세까지 탔다.
SKT다운 요소는 또 있다. 교민시장을 먼저 잠식하겠다는 안전장치를 갖췄다. 한국식 이통환경에 익숙한 재미 한인 사회를 뚫기 위해 한글 서비스에 주력했다. 힐리오 홈페이지도 영어와 한국어로 구성됐다. 교포들에겐 SKT의 한국 내 브랜드 파워와 지배력 전이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소비성향도 힐리오가 어필할 수 있는 요인이다.
미국시장에선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모회사 어스링크가 전국구 스타는 아니다. SKT도 현지에선 마이너 중 마이너다. 삼성전자가 아직 가세하지 않았으니 단말기 경쟁력도 프리미엄급에 어울리진 않는다. 자칫 한인 사회만의 사업자로 국한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그래도 힐리오는 성공해야 한다. 진정한 한국식 통신상품의 첫 해외 진출이다. SKT나 되니 이 정도의 사업을 감당할 수 있다. ‘국가대표’가 나섰는데 패배하면 앞으로 ‘통신 한국’의 세계 진출은 물건너 간다. ‘기분존’과 ‘힐리오’는 당분간 한국과 미국에서 끊임없이 뉴스 메이커가 될 것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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