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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습지 않다. 개그나 코미디의 단골 소재이지만, 고정관념과는 달리 진지하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을 새삼 느낀다. 앙드레김도 벌써 칠순을 넘겼다.
오래된 관록과 진지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27일 청담동 아뜨리에에서 만난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일하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패션 디자이너 업계의 대부답게 여유가 넘친다. 처음 보면 어눌하게 들리는 그의 말투도 듣다보니 이해가 된다. 그의 말투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소탈함 때문일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는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는 작은 갈색 빗이 들어 있다. 그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머리를 빗는 모양이다. 그만큼 그는 스스로 이미지를 가꾸는 데 철저하다. 자신에 대한 철저함이 오늘의 디자이너 앙드레김을 만든게 아닐까.
“할얘기는 전에 만났을 때 다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할게 아직 없어요.”
처음 만날 때에 비해 긴장감이 훨씬 덜한 모양이다. 사람을 자주 만나는 앙드레김이지만 첫번째 대면에서는 그는 긴장해 있었다. 기자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그였지만, 연예부 기자가 아닌 경제, 혹은 산업부 기자를 만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일 터였다. 그는 요즘 그 무섭다는 늦바람이 났다. 파트너는 삼성전자다. 그는 내년 이맘때까지 삼성전자 생활가전 제품 ‘지펠’과 ‘하우젠’ 전제품의 패턴과 소재, 문양, 휘장 등에 대한 디자인을 담당한다. 삼성전자는 그에게 ‘아트디렉터’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패션 디자인과 인더스트리 디자인은 다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 패션감각 등은 동일합니다. 삼성전자의 제품에는 제가 그동안 추구해온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인, 귀족적인 느낌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상당부문의 문양과 패턴 등을 삼성에 넘겼습니다. 삼성에서 제품을 만들어오면 제가 승인하는 형태로 협력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앙드레김의 늦바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목동 트라팰리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아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골프용품에 대한 디자인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습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삼성이 담당하고 저는 저의 분위기, 감각 등을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김치냉장고에 맞추려고 합니다. 제가 냉장고의 냉동실이나 냉장실 디자인을 하지 않습니다. 참 저도 삼성전자의 냉장고, 세탁기, 김치냉장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와의 계약에서 제품 디자인 뿐만아니라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그는 이현봉 삼성전자 생활가전 총괄 사장이 요청한 것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각종 마케팅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세계적인 가전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것에 대한 욕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전제품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삼성의 제품은 굉장히 좋습니다. 최고인 지펠과 하우젠을 제가 디자인한다는 데 욕심을 냈습니다. 초(최)첨단 과학의 삼성전자와 디자인을 같이한다는 것이 시민으로서, 디자이너서로 모두 기쁩니다. 크게 센세이셔널하게 이끌어 줄것입니다.”
그는 삼성전자 지펠과 하우젠에 다양한 디자인 문양과 색상 등을 집안 가구와 적절하게 어울리도록 만드는 작업을 한다. 세계적인 디자인 트랜드를 삼성전자에 알려주는 것은 물론, 그가 만든 독특한 형태의 냉장고 문양이 전제품에 적용된다. 딱딱한 소재 뿐만 아니라 천이나, 가죽등을 이용해 질감있는 냉장고와 에어컨도 고려중이다. 디자인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제 작품에 히피적이나 아방가르드 적인 요소들은 없습니다. 아예 제 머리 속에 없습니다. 저는 비잔틴, 로코코, 르네상스 조각 등에서 영감을 얻어 근대적으로 재창조를 합니다. 제 작품은 야하거나 노출이 심하지 않습니다. 이브닝 드레스에서도 어깨 정도 보이는 수준입니다. 절제된 지성미, 교양미를 보이는 게 중요하죠. 귀족적 로맨티시즘, 휴머니즘 등이 좋습니다. ”
그에게 사업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꼽으라면 이집트 카이로 스핑크스앞에서 열린 패션쇼와 IOC초청을 받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패션쇼 등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지펠, 하우젠과의 만남은 그에게 색다른 느낌을 안겨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펠 탄생 10주년을 맞아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시도되는 첫 작업이 그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계약 이전에 이미 상당수의 디자인 컨셉트와 자료를 삼성에 넘겼다. 삼성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 8,9월쯤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삼성측에서 시기를 조율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반응이 기대됩니다.”
앙드레김, 늦바람이 나도 단단히 났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