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ERP 서비스` 수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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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간된 ‘구글 스토리’란 책을 보면 지난 2001년에 전문 경영자로 영입된 에릭 슈미트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와 세르게이에게 오라클 ERP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

 에릭 슈미트는 두 명의 공동 창업자에게 “퀵켄과 같은 회계 소프트웨어는 초창기 벤처기업에나 적합한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직원 200명에 매출 200억원에 이르는 구글은 오라클 ERP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아마도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 CEO가 그렇듯 오라클 ERP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돈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래리와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ERP 도입의 필요성과 관련해 국내 중소 기업도 부정적이다. 특히 외산 ERP 도입은 정부조차도 국부 유출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산 ERP 도입에 따른 국부 유출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업계에서는 외산 ERP를 도입할 때 소요되는 총비용을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중 SW 구입을 위해 지급되는 비용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또 하드웨어 비용 5%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ERP 도입 비용 중 80% 정도는 컨설팅과 같은 용역비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컨설팅 용역은 국내 인력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외산 ERP 도입에 따른 국산화율은 80% 이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산화율이 80%를 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산 ERP를 도입하는 비용은 국산 ERP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많다. 이는 고스란히 해외 업체의 수익이 되는 SW 라이선스 비용 때문이라기보다 외산 ERP 컨설팅 인력의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외산 ERP 컨설팅에는 업계 최고 인력이 투입되며 이들 인건비는 국산 ERP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의 용역 단가에 비해 2배 정도 비싸다.

 ERP 도입의 목적은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업무를 개선하고 개선된 프로세스에 맞춰 ERP를 구현하는 것이다. ERP 도입 성과는 투입된 컨설턴트들의 역량에 비례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은 컨설턴트를 투입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국산 SW보호를 위해 외산 ERP 도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의견을 관련 업계나 정부에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정부는 외산 ERP 도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퀄컴 CDMA 칩이 장착된 국산 휴대폰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처럼 오라클 ERP와 같은 선진 SW가 장착된 ‘ERP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수출해야 한다. ‘ERP 서비스’는 ERP SW와 HW는 물론이고 컨설팅 등과 같은 용역 서비스를 포함한 종합적인 ERP 구축 서비스를 의미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선진 ERP 도입의 소중한 성공 경험을 축적해 두고 있다. 이런 지적 자산을 잘 활용한다면 아시아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향후 다가올 ‘애플리케이션 온라인 서비스화’에 국가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은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될 것이고, 이런 서비스의 기반을 제공하는 이른바 ‘애플리케이션 허브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최근 ERP 선도 업체인 오라클과 CRM 선도 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의 본사 경영진에게 우리나라를 온라인 서비스 허브 국가로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우수한 IT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저력을 자신했던 터라 당연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국가적으로 서비스와 관련된 투자를 감행하는 중국이나 인도, 싱가포르에 비해 우리나라는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허브로 결코 매력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애플리케이션 허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있다.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산 ERP 소프트웨어 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정부에서 여러 업체를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국산 ERP 소프트웨어는 1∼2개면 충분하다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지 않은가.

◆오병기 넥서브 사장, brian@nex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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