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콘텐츠 식별체계의 주도권을 놓고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재정경제부까지 나서 조정하고 있으나 상호 의견 차이가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창의력과 상상력 등의 문화적 감성에 근간을 두면서 동시에 CT와 IT 등 첨단기술이 복합적으로 결합돼야 하는 양면성 때문에 양 부처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업계 처지에서도 양 부처가 서로 팔을 걷어붙이고 경쟁적으로 업계를 지원해주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도껏’이다.
경제학에서도 ‘집적(agglomeration)’은 어느 정도까지 경제적인 이익이 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혼잡비용을 과다하게 발생시키는 등 불경제로 변질되고 만다. 업계에서 바라볼 때 문화부와 정통부 간의 최근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소모적인 혼잡’에 가깝다. 정답이 없는 명분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쟁을 살펴보면 주로 ‘어느 식별체계를 표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어느 식별체계가 우수한가’ ‘사업 명분이 어느 부처에 있는가’ 식의 자격논쟁에 치우쳐 있다. 우월성이라면 아직 검증된 바가 없고,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준을 논하는 것이 업계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으며, 사업 명분이라면 양 부처가 다 근거법을 들이대니 국회에서 법을 고치지 않는 한 싸움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덕분에 디지털 환경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개선되고 집행돼야 할 여러 제도와 지원사업이 발목이 붙잡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지난해 말 일본은 총리실이 중심이 돼 ‘콘텐츠산업 진흥책’을 마련하고 해당부처에 과제를 하달했다고 한다. 문화산업에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가는 세계 2위 국가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앞길이 구만리인 우리나라에서 부처 간에 업무 조정 하나를 제대로 못해 업계의 발목만 잡는다면 정부가 내세운 ‘문화콘텐츠산업 세계 5대 강국 진입’은 공허한 구호로 끝나고 말 것이다.
식별체계는 궁극적으로 산업계를 위한 사업이다. 양 부처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식별체계를 둘러싼 담론의 평가는 표준을 정하느냐 마느냐, 혹은 어느 식별체계가 우수하냐 열등하냐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산업현장에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부처가 식별체계를 따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시장에 내놓자. 그리고 지켜보자. 업계가 사용한다면 그 사업은 성공한 것이고 업계가 외면한다면 실패한 것 아닌가. 끝없는 논쟁만을 지겹게 이어갈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시장이 선택하게 하자.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디지털 식별체계인 DOI도 1997년에 개발된 이래 별도의 표준화 작업 없이 시장에서 그 효용성을 검증받아왔다. DOI 국제표준 승인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개발 후 8년이 지난 2004년 말이다. 표준화란 이처럼 시장의 검증을 일정 수준 이상 마쳤을 때나 가능한 작업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올해를 방송과 통신이 디지털 기반에서 본격적으로 융합하는 원년으로 보고 있다. 이 말은 올해 콘텐츠 빅뱅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디지털환경에서의 콘텐츠 식별체계는 더는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될 사업이다.
정부는 이제 끝나지 않을 논쟁일랑 잠시 접고 시장의 선택을 기다리기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행정과 예산의 낭비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식별체계는 부처의 이익이 아닌 업계의 이익을 위해 만드는 것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기 바란다.
◆방극균 한국음악산업포럼 위원장 bkk9271@yi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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