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영섭 ARM코리아 사장(4)

Photo Image
지난 96년 건한 필자(왼쪽)와 창립 멤버인 이춘우 이사는 자체 개발한 일체형 PC를 들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쇼’에 참가했다.

(4)ARM과의 조우-성공을 뒤로하고 또 다른 도전을 택하다.

 고전 끝에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 96년 교육부가 인터넷을 이용한 영상 강의 인프라 구축사업인 학교정보통신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우리는 벼랑에서 천국으로 돌아섰다. 일단 한 학교의 구축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일감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건한은 첫 수주를 따낸 후부터 1년여 동안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삼성물산 등의 기업체 및 학교에서 80여건의 공사를 따내고 수행했다.

 거들떠 보지도 않던 투자자들도 돈을 싸들고 찾아왔다. 96년 말이 되자 액면가의 몇 배의 가격으로 주식을 사겠다는 벤처캐피털이 줄을 이었다. 모두 성공에 도취하였지만 나는 내심 불안했다. 우리의 사업이 어떤 뛰어난 요소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을 조합, 응용한 것이었기에 쉽게 모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나는 새로운 부문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동업자들은 자원을 추가로 더 투입해 시장 선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자는 생각이 강했다. 이는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자원을 핵심역량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다각화를 위해 배분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결국 회사는 역량의 대부분을 SI부문에 투자했고, 일부 자원을 신규사업 개발에 투여키로 했다. 96년 일체형 PC 샘플을 만들어 96년 컴덱스(COMDEX)에 출품하기도 하고 샘플을 들고 컴팩과 같은 기업들을 만나기도 했다.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에 자신감은 충만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뢰는 너무나 미약했다.

 실패를 겪은 지 9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시중에서 당시 우리가 디자인했던 PC와 거의 똑같은 일체형 PC가 팔리고 있음을 보고 나는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한 세상일이 그러하듯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분에 겨운 성공이 때로는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일체형 PC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또 다른 기회를 찾아야만 했다. 신규사업 부문을 맡았던 나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했다. 많은 해외 대기업과 접촉했지만 그들의 장벽이 너무 높았기에 나는 외국의 중소기업 가운데서 협력업체를 고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레드헤링이라는 IT잡지 사이트에서 나는 ARM과 조우하게 됐다.

 당시 레드헤링은 향후 50년간 가장 유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50개의 상장기업과 50개의 비상장기업을 소개했다. ARM의 기술력은 한마디로 놀라운 것이었다. 직원이 70여명밖에 되지 않고 생산 공장도 없이 설계기술 하나로 삼성전자, 인텔, TI, 필립스 등 전세계 굴지의 반도체 업체들에 기술을 라이선스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기술의 영역도 멀티미디어, 가전, 모바일 제품용 반도체 CPU 코어 기술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도구 및 컨설팅, 유지보수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PC부문을 인텔이 장악했듯이 PC가 아닌 모든 디지털 기기에는 ARM이 표준이 될 것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즉시 사업을 같이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고 행운이 따라서 그런지 그 다음날 본사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중이니 만나자는 회답이 왔다. ARM사와의 첫 미팅 후 2주 후에 다시 만날 때 20여쪽에 이르는 합작회사 설립 제안서를 준비했고 이에 감동한 ARM사와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몸담고 있던 건한의 공동 창업자들은 여전히 SI에 매진하자는 입장이었다. 나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번성하고 있는 건한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모험을 할 것인가.

 sam.kim@arm.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