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 프라할라드 지음. 김성수 옮김. 세종서적 펴냄
2004년 대한민국의 TV시청자들은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50%대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파리의 연인’이 뜻밖의 결말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줄거리가 그저 극중 주인공이 쓴 시나리오 속의 이야기였다는 예고된 결말에 시청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인터넷에 자신만의 결말을 올리는 등 각자의 시청 경험을 완성하기 위한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이어졌다. 결국 드라마의 결론은 시청자와 작가의 의견이 절충되는 선에서 엉거주춤한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이 드라마는 제작단계부터 수많은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가 끼어들고 ‘파리젠느’라고 불리던 시청자 커뮤니티와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가운데 완성됐다.
이는 드라마라는 상품을 둘러싼 가치가 공급자 네트워크와 소비자 커뮤니티 속에서 공동으로 형성돼 가는 전형을 보여준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는 회사가 창출하는 것이고 이렇게 창출된 가치는 시장에서 일방적으로 교환됐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미래의 가치는 소비자와 회사가 공동 노력을 통해 각자에게 고유한 맞춤식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창출(Co-Creating)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체 산업 시스템은 결국 가치가 공동 창출되는 경험공간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와 기대사항을 공동으로 형성해가야 하며 소비자들은 기업과 함께 ‘경험’을 공동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최근 드라마들이 시청자 커뮤니티와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접점에서 고유의 가치가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화사는 반지의 제왕 저자인 톨킨의 열렬한 추종자들을 초기 유력자로 활용하면서 영화의 세부 항목들에 그들의 피드백을 구했으며 제작팀과 연락할 수 있도록 도모했다. 거의 모든 이가 영화 제작사 측이 원작과 팬들을 다루면서 보여주었던 존중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 영화 제작에서 기대사항을 공동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선도자적인 지원이 필요하게 됐다.
문화산업의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미묘한 변화들에 대해 저자는 이것이 전체 산업시스템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거대한 지각변동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소비자가 고립되고 무지한 존재였다면 이제는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각종 정보에 해박한 모습의 소비자들을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존 기업은 막대한 비용부담 없이 어떻게 새로운 타입의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르기 위해서는 전략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관리자들이 활용하는 자원은 회사와 공급자 네트워크를 넘어 소비자 커뮤니티의 지식 기반까지 확대된다.
이제 중심기업의 목표는 단순히 자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네트워크에 지적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원이 분배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결국 기업과 관리자가 겪어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개인의 중심성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을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소비자든 종업원이든 혹은 투자자나 공급자든 관계없이 개인의 중심성이 우리의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인을 바라보는 기업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기업을 바라보는 개인 중심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의 영향이 비즈니스의 세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교육, 의료, 예술, 과학,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기관에 대한 개인중심의 시각으로 변해가는 추세는 멈출 수 없다.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모든 기관이 사회적 정당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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