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땅고’와 IT839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탱고’로 불리지만,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가 아닌 ‘땅고’다. 최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차 중남미 ABC 국가(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를 순방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No llores por mi, Argentina’(Don’t cry for me, Argentina) 등의 땅고 공연을 관람했다. 아르헨티나라면 일단 아주 먼 나라라는 느낌이 강하다. 비행기로 하루 꼬박 날아가야 하므로 가까운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땅고와 ‘에비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보르헤스, 축구 신동 마라도나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매우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의 힘이다.

 지난 8월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제2회 국제땅고경연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1등상을 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일본 10여개 조를 포함해 외국 27개 조와 아르헨티나의 내로라 하는 ‘춤 도사’ 114개조나 참가한 대회에서, 달랑 한 팀만 참가한 한국이 1등상을 받은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인 커플의 춤 장면을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정말 인상적인 것은 대회 입상자들을 위한 환영 만찬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이 한 말이다. “땅고야말로 굴뚝 없는 최고의 산업이다.”

 아르헨티나 최고의 문화상품은 역시 땅고다.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과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아르헨티나가 땅고의 나라라면,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은 무엇일까. 겨울 연가? 욘사마? 조수미? 물론 이것들이 모든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 ‘삼성’(SAMSUNG) 아니면 LG다. 삼성과 LG의 휴대폰이며 텔레비전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웃 브라질과 달리 아르헨티나에서는 ‘애니콜’이며 ‘싸이언’이 맥을 못 춘다고 해도 그렇다. 사실 19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까지 하는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 기업들은 일찍 보따리를 싸서 떠났다. 당시의 나쁜 이미지가 ‘싸이언’과 ‘애니콜’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아르헨티나가 언제까지 우리 IT제품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ABC 국가와 ‘IT협력센터’를 설립하기로 약속하고, ‘IT 비즈니스 포럼’이나 ‘IT기술 시연회’를 통해 전자태그(RFID)·디지털 콘텐츠·디지털멀티미디어(DMB) 등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을 전파한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IT분야에서 특히 선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번 ABC 국가 순방에서 IT839를 통한 ‘IT 코리아’의 이미지는 확실하게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후속조치다. 한국의 IT839는 남미의 ‘땅고’처럼 되어야 한다. 한국 하면 “아! IT839의 나라”하고 떠올라야 한다. 그래야만 인구 5억명, GDP 2조달러의 경제 신대륙에 우리의 새 성장동력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내년도 IT 수출 성장률이 올해의 30.8%의 절반 수준인 16.6%로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에서, IT839를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IT839에도 당의정(糖衣精)은 필요하다. IT839는 단순한 기술만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 문화라는 당의정을 입혀야 한다. 그래야만 남미의 땅고처럼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상품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IT839의 당의정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우리의 노하우가 그 중 하나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은 지난 98년부터 중남미 지역 IT 정책 담당자 및 전문가 초청 연수사업을 진행해 왔다. 총 14개국 118명에 달한다. 이들 모두 해당 국가의 핵심 인력임을 감안할 때, 이들을 통한 ‘IT 외교’의 성과는 매우 크다. 정보문화진흥원은 이번 중남미 순방 기간에 한국 연수를 거친 전문가들과 현지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 배운 것을 너무 잘 사용하고 있다” “더 기회를 달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IT 브랜드의 확실한 전도사가 된 것이다. 정보문화진흥원은 또한 2002년부터 중남미 11개국에 65명의 인터넷청년봉사단을 파견했다.

 가슴을 울려야만 팔리는 시대다. IT839도 정보격차 해소의 당의정을 입고 중남미 사람들의 영혼을 두드리는 ‘상품’이 되길 기대한다.

◆손연기(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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