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원유가 상승, 수출 증가세 둔화, 기업의 투자 회피, 증폭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 중산층의 빈곤화, 견실한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외면과 그로 인한 도산, 고소득층 노조의 파업 등등 실로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과연 어느 길로 가게 될 것인가.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도 구호는 던져졌다. 2만달러 소득 달성,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과 이를 위한 신성장 동력 산업의 추진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을 해내려면 무엇보다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신성장 동력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과연 무슨 일을 추진하고 있는가. 경쟁국인 중국과 인도는 이공계를 지망하는 똑똑한 젊은이들을 우리의 30∼40배 규모로 양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인력양성의 비책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의 국책 인력양성 사업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공계 대학의 수와 정원을 대폭 줄이고 질을 올리도록 해야 한다. 모든 대학의 학생들에게 골고루 돈을 나눠주는 것은 옳지 않다. 수요도 적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열정도 없고 자세도 안 갖춰진 저질의 과학기술자를 다수 배출하고서야 어찌 이공계 기피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그래서는 좋은 인재는 결코 이공계로 오지 않는다. 둘째, 대학이나 사람의 평가에서 외형적 기준을 버려야 한다. 실효도 없는 자격증 제도는 없애야 한다. 대개 인력양성 사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에 무슨 학위나 자격증을 가진 사람, 혹은 무슨 강의를 들은 사람을 몇 명 배출했다 하는 식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단순노동의 성과를 가늠할 때에나 쓰는 방식이다. 한 명의 탁월한 엔지니어가 사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대 산업의 속성을 모르는 평가 방식이다. 그런 사람들을 아무리 키워봐야 중국, 인도와는 게임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력양성 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
첫째, 새로운 시스템을 착상하고 설계부터 실제 구현, 생산과 경영, 마케팅까지의 전 공정을 (남과 협력하여 직접 하건, 남을 시켜서 하건 간에) 관장할 수 있는 소위 슈퍼엔지니어를 키워내야 한다. 우리는 수치로는 인도와 중국에 상대가 안 되므로 우리가 키워내는 엔지니어는 전체 시장의 방향과 기술의 동향을 내다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제로 주어진 스펙을 구현하는 것은 인도와 중국에 아웃소싱할 수도 있다. 공대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이 사람과 대화, 협상하는 기술, 미래 사회와 시장의 성격을 파악하는 기술, 기업의 사회에서의 성공적 역할모델을 다루어야 한다.
둘째, 대학이 자신의 핵심 영역을 정확히 천명하고 제 자리에서 집중하며 일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돈벌고 일찍 출세하려고 본연의 일, 즉 과학과 공학의 심오한 본질적인 문제에 깊이 몰두하는 일을 경시하게 해서는 안 된다. 깊은 샘에서 나온 물이 멀리 흐를 수 있고 뿌리가 깊은 나무의 가지가 무성하다. 연구비 총액과 논문 수만 가지고 대학과 교수의 업적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외형적인 평가는 외형적으로 우수한 사람만 만들어 낼 뿐이다. 가식을 뚫고 내용의 깊이와 가치를 바로 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책 사업은 준비된 대학과 탁월한 사람을 골라 지원하고 손을 떼야 한다.
셋째, 인력양성을 하는 데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중요한데 좋은 기업에 투자가 되려면 모험자본가의 역할과 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튼튼한 벤처자본가가 없는데 튼튼한 벤처기업이 자랄 수 없다.
끝으로, 정부의 모든 국책사업은 외형적인 지표를 단기간 내에 달성하는 것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탁월한 질과 장기적 산업의 기반 구축을 향해 가야 한다. 정부가 좋은 사업을 하고 싶으면 넓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듣고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가를 사업의 총책임자로 뽑아 전권을 주면 된다. 그 방법이 혹시 불안하고 느려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만이 제대로 된 인력을 키워내는 길이다.
<경종민 한국과학기술원교수 kyung@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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