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분야에서 리더가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한 국가의 리더나 세계적인 리더가 되는 어려움이란 두 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IT분야에도 실력과 능력이 출중한 IT리더가 있어 IT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IT선진국으로 국민 대다수가 이에 대해 커다란 프라이드를 느끼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한 수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한 제품들을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우리 IT 기술이 얼마나 괄목할 정도로 발전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이 분야에서 종사한 리더들의 역량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 민주국가가 민주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민주투사가 양산되듯이, 그동안 IT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IT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투사격인 IT리더를 만들어냈다. 여기도 IT리더 모임 저기도 IT리더 포럼, 한 차원 높여서 IT 코어스(CORES) 포럼, 그야말로 리더들의 천지다. 리더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또 리더 과정이 있어 정규 학위를 가진 자만이 리더가 되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다. 정규 대학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거쳤다거나 6개월 과정의 IT친목 대학원을 마쳤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리더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IT리더는 누구를 일컫는 호칭인가. 선을 그어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전·현직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 전 현직 IT업체 사장을 비롯한 고위직 임원, IT관련기관의 장, 관련 학회 회장, IT 관련 대학 원로 교수들이 대충 자칭 타칭 리더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7대 총선이 끝난 지금, 선거의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역구도가 어떻게 되었다거나 당선자 연령층이 젊어졌다거나, 출신 성분이 운동권인지 체조권인지를 놓고 매스컴에서는 말 잔치가 요란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6대 국회까지 매스컴을 장식했던 원로급 민주 투사들의 퇴조라는 점이다. 3김의 영향력의 퇴조, 4∼5선 의원의 탈락, 지역 토박이 어른의 부침, 이름만 들어도 거물급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사들의 낙선은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모 대기업 총수가 수년전 ‘국민은 일류, 기업은 이류, 정치는 삼류’라고 했다가 당시 청와대의 괘씸죄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가 있다. 그때 정치가들이 그 말을 새겨듣고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을 시도했다면 삼류정치가 이류가 되고 또 일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IT판에도 정치판 못지않은 변화가 요구된다. 6개월이 멀다하고 IT신기술이 넘쳐 나오고, 3개월이 짧다하고 IT 신조어가 유통되며, 하루밤 자고나면 기발한 IT응용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IT업계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도 386세대가 아닌 그 후배들이며, 머지않아 839세대(80년도 출생, 30대, 90년도 학번)로 자리바꿈할 날이 올 것이다. 왕년의 자랑은 더 이상 기사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IT역사가 벌써 과거 자랑만을 늘어놓을 노년기에 든 것은 아니다. 이제 청년기로 막 진입을 시도한 나이에 불과하다.
지난주 전자신문 주요 타이틀을 읽어보다가 IT격세지감을 진실로 느끼게 되어 우리 IT리더의 고뇌를 읊어 보았다. ‘U시티 건설 막 올랐다’ ‘UPnP 포럼 등 IT국제 회의 줄 잇는다’ ‘RMBS시장 꾸준히 커진다’ ‘블로그·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 서비스’ 이것들이 기사 내용이 아닌 기사 타이틀이다. 내가 자칭 IT리더라고 하더라도, 위에 열거한 신문 기사에 나오는 기술 트렌드에 대하여 정책 조언을 한다거나 아니면 응용 제품개발 자문을 한다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솔직이 두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이 쯤에서 리더를 포기하는 선언해 버리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하지 않을까. 원로 정치가가 정계은퇴 선언을 하듯이 말이다.
<오해석 경원대학교 부총장 oh@kyu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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