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면 으레 신문과 방송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무엇이든 정리하는 것이 숙명인 언론은 한해를 가장 쉽게 요약해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10대 뉴스, 올해의 인물, 올해의 키워드를 선정, 발표한다. 상투적이고 식상하긴 하지만 언론 방송사들이 내놓는 올해의 요약본에 독자와 시청자들이 귀와 눈을 돌린다.
미국 이라크 공격과 후세인 생포, 지구촌 곳곳 대규모 폭탄테러, 사스 파동 등으로 이어지는 해외 10대 뉴스는 대량 살상과 테러,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인간에 대한 지엄한 심판으로 얼룩져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결코 산뜻하거나 유쾌하지 않다.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와 대선 자금 파문, 대북송금 특검 등이 올해 빅뉴스로 다뤄졌다. 강남 집값이 폭등했고 신용불량자도 급증했다. 청년실업은 심화됐다.
서민들은 ‘인생 역전’을 꿈꾸며 로또에 열중했다. 경기침체로 지갑은 더욱 얇아졌지만 45개 숫자 중 6개를 맞히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비틀린 희망을 안고 우리 국민은 올 한해 동안 3조7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쏟아 부었다.
그나마 밝은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연예 쪽을 들여다봤다. 톱스타 이혼, 또 다른 톱스타 이혼 공방, 해외 유명 스타 투신 자살, 납치 파경, 그리고 이런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누드 광풍’이 눈에 띈다.
식자(識者)들이 뽑은 올해의 키워드는 한결 뒷맛이 더 쓰다.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인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을 꼽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한국이 올 한해 동안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헤맸다는 아픈 반성이 담겨 있다.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연상케 하는 사자성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담론을 곱씹는 해학도 있다. 또 대학교수들은 점입가경, 이전투구, 지리멸렬, 아수라장 등등 온통 어둡고 암울한 사자성어만을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다.
이제는 내가 선정위원이 돼서 올해의 키워드를 뽑아 본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주저없이 ‘아듀 2003’을 최고의 키워드로 선정했다. 안녕이라는 프랑스에서 유래된 아듀는 영원한 이별을 내포하고 있다. 올해 같은 해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창희 정보사회부 차장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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