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벤처 살리기

 1998년 1월, 미국 컴퓨터 회사 DEC가 컴팩에 인수합병(M&A)된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미니컴퓨터의 대명사였던 VAX나 훨씬 이전의 PDP에 매달려 밤새 씨름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DEC의 실패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큰 아쉬움으로 기억된다.

 컴퓨터의 귀재로 불리던 켄 올슨이 이끌던 DEC은 1980년대에는 세계 2위의 컴퓨터 기업이었다. 잘 나가던 이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무엇보다도 1990년대 들어 PC의 힘을 과소 평가한 때문이었다. DEC은 PC에 적용될 수 있는 첨단 기술들을 남보다 훨씬 빨리 개발해 놓고도 이 기술을 PC보다는 이미 고객들이 떠나가고 있었던 자기들의 핵심 제품인 미니컴퓨터에 적용하는 데에만 집착하였다. 결국 시장의 수요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DEC은 누적된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본인들이 활용하지 못했던 첨단 기술들은 얼마 후 인텔과 컴팩, HP 등의 기업에서 꽃을 피웠다. 어떤 사람은 미국의 모든 PC 기업들은 DEC에서 개발된 첨단 기술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다고 까지 말한다. 한 기업이 죽어서 다른 여러 기업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 역할을 한 예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벤처를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M&A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이는 부실 벤처의 구조조정이나 건전한 자금시장을 촉진하는 시장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다. 특히 소유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하고 실패를 죄악시 하는 우리의 풍토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나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세제 등 관련법의 보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기업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업 가치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과 전문가가 없다면 현재 추진 중인 M&A에서도 부당 내부거래나 편법적인 상속, 시장 교란 등으로 인한 폐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M&A가 벤처기업 라이프 사이클의 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각광 받던 벤처가 어려워진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선별능력이 부족한 정부 주도의 직접적인 지원책이 주 이유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벤처기업확인제도이다.

 벤처는 기본 개념상 ‘고위험 고수익’의 비즈니스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벤처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 정신 덕분에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실패의 쓴 잔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벤처기업확인제도는 ‘고위험 고수익’을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여러 사람들이 벤처기업의 모럴 해저드를 탓하나 정부로부터 벤처 확인을 받자마자 세제 혜택, 금융지원, 특례 인력 배정 등의 특혜를 받아 ‘저위험’으로 바꿀 수 있는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결과로 각종 벤처 비리가 발생하고 부실 벤처를 양산하였으며 옥석이 구분되지 않아 진정한 벤처들의 피해 또한 컸다. 여기에는 실패한 벤처들이 빨리 정리되지 않아 이에 투입된 자원들이 다시 유용하게 재투입되지 못함으로써 발생된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피해는 한동안 왕성했던 벤처정신마저 쇠퇴한 것이다. 물론 벤처기업확인제도가 한국적 상황에서 초기 유아기의 벤처 기반을 육성하기 위한 고육책인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근본적인 개념에서부터 배치되는 제도를 원위치로 되돌려 놓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 사회는 이상하리만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벤처정책은 과거로부터 충분히 배워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부터 경쟁력있는 기술개발 촉진, 인력 양성, 가치평가 능력 배양 등 시장 기능과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초점을 더 확실히 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 경제의 활력소인 벤처를 다시 살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크게 위축되어 있는 벤처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 살리자.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기업경영과 기업가정신은 절대로 별개가 아니다. (건전한) 기업가정신이 없는 (벤처)기업은 반드시 망한다.”

 ◆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sjpark@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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