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다시 `인사철` 인가

 병영의 우스개 소리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이 있다. 제대 명령을 받은 말년 고참병사들의 몸사림을 빗댄 것이다. 어디 고참 병사뿐이겠는가.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샐러리맨들도 비슷한 상황에 돌입한다. 위로는 전문경영인에서부터 아래로는 대리급 사원에 이르기까지 ’몸조심 강조기간’을 선포한다. 기업의 인사가 대부분 연말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실적과 고과야 눈에 보이는 것이니 차치하고서라도 괜시리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액운이 끼이면 말 그대로 승진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초장에 치는 사고는 만회할 시간이라도 있지만 막판 실수는 치명적이다. 승진과 진급에 목매는 샐러리맨들은 그래서 어김없이 인사철이면 납짝 엎드린다. 설쳐(?) 봐야 득될 것 없다는 사실은 체험적 명제다.

 올해는 ’몸조심 기간’이 더욱 눈에 띌 것 같다. 연례 행사인 기업 인사 보다 더 큰 ’국가적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재신임 받겠다’는 사상 초유의 선언을 했다.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지만 약체에 망신당한 축구 국가대표 코엘류 감독도 ’재신임’을 물어야할 처지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의 ’재신임 정국’이 펼쳐 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에 성공하건 말건 동전의 앞뒤면처럼 따라 붙는 것이 있다. 인사 개편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청와대와 내각의 일대 쇄신을 약속했다. 사람을 대폭 바꾸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행자, 해양등 일부 각료가 낙마했지만 조각 8개월만에 전면 개각이 예고된 셈이다.

 문제는 인적 쇄신을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관료 조직은 ’복지부동’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일 바뀔 지도 모르는 장관의 영이 설리 없다. 현안을 소신있게 처결할 공무원도 많지 않다. 민간기업 임원들에게 인사철 몸조심이 관행이라면 인사 앞둔 관료조직은 한술 더 뜬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돌아가는 업무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IT관련부처만 해도 정부 출범 초기 인사로 날 새웠다. 문화부 같은 곳은 얼마전까지도 산하기관장 인사로 홍역을 치렀다. 이제 막 인사 끝내고 일 좀 해보려는 판에 다시 인사를 해야할 상황이다. 우린 인사로 허송세월하는 동안 이웃집 중국은 고속열차로 달리고 있다.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차곡차곡 지도자를 배출한다. 준비되고 계획된 일 처리는 곧 안정감이다. 국가 기본 조직의 안정감 속에서 역동성을 살린다. 날로 커가는 중국을 바라보는 일은 두려움 자체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력을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은 참담함이다. 다시 인사철이다. 온 나라가 가는 사람 오는 사람으로 떠들썩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기업의 수준이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보다 훨씬 예측가능하고 준비된 인사를 할 줄 안다. 만약 기업의 인사가 정치권력 수준이었다면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한국의 IT기업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세계 정상권에 올라와 있다. 그래서 걱정은 다시 정치와 정부로 향한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은 미국·일본 본받을 것 없다. 제발 우리 기업들에게라도 배우자.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검증하며 배치하는지 삼성전자, LG전자, KT, SKT를 벤치마킹하라는 것이다. 코드도 좋고 개혁의지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능력과 적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권에 시달리고 부정축재로 욕먹어도 우리 기업들은 세계와 경쟁하고 살아 남았다.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