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치킨게임

 국제정치학에서 자주 거론되는 게임이론은 1950∼1960년대 미국과 구 소련간 극심한 군비경쟁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됐다. 특히 핵 전쟁을 설명할때에는 ‘치킨게임’이 등장한다. 쿠바의 미사일 위기나 북핵문제 등 굵직굵직한 국제적 대립이 흔히 치킨게임에 비유된다.

 치킨게임은 1960∼197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임이다. 주말 밤시간에 한적한 도로에서 두명이 각자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 누가 더 용감한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이들의 선택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꺽어 생명을 구하는 대신 동료들로부터 치킨(겁쟁이)이라고 불리던지, 충돌해서 치킨이라고 불리지 않는 대신 개죽음하던지 둘 중의 하나다.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도 치킨게임이 등장한다. 주인공 제임스 딘과 학교짱이 벌인 치킨게임은 각자 차를 몰고 벼랑으로 내달리다 차에서 늦게 뛰어내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 영화속의 치킨게임은 제임스 딘이 뛰어내리고 학교짱은 벼랑으로 직행하는데 사실은 학교짱이 제임스 딘보다 먼저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차문이 고장나 문고리를 잡고 벼랑으로 떨어지는 엽기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문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선 두명의 시골 초등학생이 레일위에서 기차가 다가올 때 누가 먼저 피하는 가를 가리는 치킨게임을 벌인다.

 오는 21일 하나로통신 외자유치 결정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LG와 하나로측이 벌이는 세몰이는 이러한 치킨게임을 연상케 한다. 이제는 물밑 협상의 시간이 많지 않고 워낙 시각차가 커 치킨게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도 않아 보인다. 한치의 양보없이 주주 확보에 몰입하고 있는 양측의 벼랑끝 선택은 그래서 그 결과에 따라 치명적인 상처를 수반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치킨게임의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두 당사자가 함께 핸들을 꺾어 공멸을 피하는 것이라는 이치가 이번 하나로통신건에도 유효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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