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칼럼]장년 대덕단지의 그늘

 `정희 대통령’식 리더십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전경련이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면서 잠시동안 재계와 정부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논쟁은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지만 정치·경제가 갈피를 못잡고 혼돈현상을 보이면서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를 우려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까 강력한 지도력에 의해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요즘 이런 ‘박정희 대통령’식 리더십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연구인력 이탈과 젊은층의 이공계 지원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으나 정부의 대처가 안일한데서 나오는 지적들이다.

 과학기술계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 독재의 부작용을 빚었지만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의 근간임을 가장 깊이 인식했고 실천했던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계에서 그의 치적 중 하나로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를 꼽는다. 그가 ‘과학기술 입국’을 주창하며 조성을 지시했던 대덕연구단지가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이제 장년으로 자랄 만큼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곳에서 반도체, CDMA방식 기술이 개발, 실용화되는 등 그간 제공해온 경제성장 동인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때문에 대덕연구단지가 미국보다 한국이 IT분야에서 앞서는 힘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즘 대덕연구단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조성 초기 내세운 과학기술 강국의 뜻을 제대로 이루어갈 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과학기술자가 우대받는 세상을 꿈꾸며 출연연의 불을 밝혔던 이곳 이공계 인력들 중 상당수가 대학으로, 기업으로 떠났다. 지난 2년동안 16개 출연연에서만 200명 이상의 박사급 연구원이 연구소를 떠났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이공계 인력 공직 진출 확대 정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이곳 연구원들의 80%이상이 지금도 기회만 주어지면 이직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올해 1학기중 KAIST학생 78명이 의대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등 선배들의 행로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실감하게 된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차라리 경제적 여유를 찾겠다며 의대나 한의대 입시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사이 일반인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던 대덕단지 연구원들이 이제는 기피직 종사자로 전락한 것이다.

 대덕연구단지의 또다른 그늘은 이곳 소재 벤처기업인과 연구원들의 사랑방으로 애용되던 벤처카페 ‘아고라’가 최근 문을 닫은 것이 잘 말해준다.

 이유는 무엇인가.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기간 중 일년에 적어도 서너번이라도 대덕단지를 찾았다면 지금의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외치는 ‘과학기술 육성’이 ‘정치구호’에 그친게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금도 출연연이 다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이 엊그제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행정 구현 차원에서 대덕단지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했다”며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말해 기대는 된다.

 이제 장년이 된 대덕연구단지가 ‘제2 과학기술 입국’의 주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금 그늘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다. 연구원 이직은 임금 같은 물질적 문제보다 그 사회가 보여주는 존경심이나 애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박 대통령을 새삼 거론하는 것이 연구원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우대 정신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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