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통부의 정체성회복

정부부처내에서 정보통신부의 위상은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정통부 장관은 국무위원 서열로 중상위권이며 맡고 있는 역할도 만만치 않다. 정보통신기술(IT)이 발달하면서 정통부가 관여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오지랍이 넓다’는 식의 비난을 본의 아니게 듣고 있다. 이러한 비난을 감수하면서 정통부는 통신을 기반으로 인터넷 등의 IT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세계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하지만 참여정부들어 정통부의 위상과 역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진대제 장관이 ‘미래에 대한 먹거리로 신성장동력의 9대 산업‘을 들고 나오면서 정통부의 역할이 IT산업을 넘어서 전 산업분야로 크게 확대된 듯했다. 정통부는 부처간 업무조율 과정에서 차세대 이동통신을 차지하고 나머지 부문에서 타 부처와 공유하는 전과(?)를 올린 것으로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적으로 정통부의 업무와는 전혀 생소한 지능형 로봇이나 텔레매틱스 등 새로운 분야에 발을 걸치게 됐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정통부가 신성장동력에 매달린 6개월, 본연의 역할인 정보화부문과 통신산업정책에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오히려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정통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된다.

 정통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10년 가까이 국가 정보화와 통신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면서 정통부 역할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과 긍지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야심적으로 추진해왔던 전자정부업무도 행자부가 전자정부국을 신설, 이를 관장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통부의 핵심인 정보화부문도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게 됐다.

 아울러 정통부의 근간인 통신서비스정책마저 흔들리고 있다. 인터넷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민간단체들이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정통부 고유업무인 통신요금정책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발신자번호표시서비스(CID) 요금 인하에 대한 민간단체들의 주장이 거세지면서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은 요금인하를 검토하거나 요금인상을 취소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은 정통부보다 민간단체의 눈치를 보게 됐다. 더욱이 KT와 SK텔레콤으로의 쏠림현상 가속화로 정통부보다는 공정위의 간섭이 불가피하게 된데다 방송위원회가 방송법 개정을 통해 정통부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정통부 스스로 초래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먹이면서 본연의 업무인 통신정책의 애매모호함만을 강조한 결과가 이런 현실을 가져온 것이다.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 무산으로 인해 하나로는 물론 법정관리중인 두루넷과 온세통신 등의 처리마저 어려워지는 등 통신서비스시장을 혼미하게 만든 정통부의 자업자득이다. 심지어 업체와 민간단체 모두로부터 불신을 초래, 위상저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IT가 모든 분야와 관계를 맺으면서 산업적인 영역을 확대했더라도 고유영역인 통신서비스정책과 정보화부문에서 많은 것을 잃게 돼, 상대적으로 정통부의 컬러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정통부는 정체성 회복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통부는 IT분야를 홀로 독점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부처와의 관계, 그리고 소비자를 대변하는 민간단체와의 관계, 사업자와의 관계속에서 정통부의 역할과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T산업부 원철린 부장 crwon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