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장우 이메이션코리아 사장(1)

 취업전쟁을 겪고 있는 요즘의 대학생들이 들으면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20여년 전인 1981년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취업 여건이 좋은 편이었다. 나 역시 무려 5, 6개의 회사로부터 입사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 가운데서 기대반 설렘 반 선택한 직장은 동아건설이었다. 인생의 첫출발을 번듯한 직장에서 하고 싶고 막연하나마 멋지고 전문성있는 업무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대학 4학년생들이라면 누구나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발령도 제대로 내주지 않고 보직도 맞지 않아 3일도 채 되기 전에 사표를 내버렸다.

 졸지에 난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실업자 생활은 물질적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심적 고통도 심하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이 무렵 한국3M에서 수세미 세일즈맨으로 입사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나 선뜻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3M이 전세계 시장에서 유명한 기업이란 사실은 금방 알게 되었지만, 수세미를 팔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일즈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때였다. 세일즈맨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망설여지는데 그것도 수세미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결심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짧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민과 망설임의 시간이었다. 주위의 선배들과 상담도 하고 고민 끝에 결국 한국3M에 입사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것이 바로 1982년 4월 1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비록 말단 수세미 세일즈맨이었지만 3M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에 입사한 이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판매기법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것은 현재 세계적인 테이프드라이브 미디어와 저장매체 미디어 공급업체에서 판매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나에게 세일즈의 기본을 닦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에서 파견된 세일즈 교육담당자 ‘척 라이언’에게서 소비재 판매에 관한 과학적인 방법을 배우고 인천지역과 충청도 지역을 담당 구역으로 할당받았다. 나는 거의 한 달 사이에 인천에서만 40∼50군데의 신규 거래처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부터 이왕 수세미 세일즈맨으로 나설 바에는 철저한 프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문성과 끈기 그리고 도전 정신을 지닌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 다녔다. 심지어 출근과 퇴근도 여의도에 있었던 3M 사무실이 아닌 인천지역의 거래처였던 슈퍼마켓으로 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상인들과 부대끼며 정말로 세일즈가 무엇인지를 이때 많이 배웠다.

 오늘날 하이테크기업인 이메이션코리아의 전문경영인이 된 데는 바로 20여년 전 수세미 세일즈맨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그때의 결단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jwlee@im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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