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 기자의 IT@JAPAN]신덴덴의 반란

 2003년 7월 17일은 일본 통신산업의 기본틀이 뒤틀린 날이다.

 후발 통신업체를 일컫는 이른바 ‘신덴덴(新電電)’들이 모여 일본 총무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총무성이 지난 4월 허가한 ‘NTT망 접속료 4.7% 인상’이 위법이며 따라서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통신 2, 3위인 KDDI와 니혼텔레콤를 비롯해 5개 신덴덴이 제소를 위해 뭉쳤다.

 관료중심사회로 얘기되는 일본에서 민간 통신업체가 ‘감히’ 총무성에 맞서 소송을 낸 것 자체가 처음이자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 소송은 신덴덴 내부에서조차 ‘법정에서 총무성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할 만큼 불리한 싸움이다.

 소송의 원인은 우선 접속료 인상에 따른 직접 손실이다. 접속료가 4.7% 늘어날 경우 5개사가 NTT에 추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은 200억엔(2000억원)에 이르는 큰 돈이다. 그렇다고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영원히 찍히는’ 일본 관료들을 자극할 거리는 아니다. 근본 배경에는 ‘총무성이 정계의 압력에 굴복해 NTT편이 되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다.

 신덴덴을 만든 게 바로 관료들이기에 신덴덴과 총무성은 본래 한편이다. 지난 80년대에 관료들은 통신망과 서비스 모두를 NTT 독점 하에 두는 한 일본 국민들이 비싼 통신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신덴덴을 키우기 시작했다. 85년 통신자유화가 이뤄졌고 그후에도 ‘그들의 밀월’은 끈끈했다. 총무성 관료들이 신덴덴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공동의 적은 물론 NTT. 통신 공룡 NTT는 조직력과 로비로 정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었다. 여당도 야당도 모두 NTT에 기울어져 있다. NTT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의원들을 일컫는 ‘NTT족’란 조어가 생길 정도다. 결국 통신시장은 ‘NTT와 정치인’ 대 ‘신덴덴과 관료’가 기본틀이었다.

 두 세력간 싸움에서 NTT측이 힘을 가졌다면 신덴덴측은 명분을 가졌다. 국민을 위해 통신료 인하를 이끌어낸다는 것. 실제로 신덴덴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87년 3분 300엔(KDDI)∼400엔(NTT)이던 장거리 통신요금이 지난해 80엔으로 떨어졌다. 총무성은 3년 전 ‘장기증분비용모델’이란 산정방식을 도입해 일거에 접속료를 절반 이하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편인 총무성이 접속료를 올려버렸으니 신덴덴으로선 그만큼 충격이었다. 급기야 소송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일각에선 이번 소송이 실상은 총무성이 아닌 NTT족 의원을 노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자신들도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동지인 총무성 관료들에게 정치인을 견제할 무기를 주겠다는 친위쿠테타인 셈이다.

 이런 분석의 바탕에는 신덴덴의 총무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총무성이 신덴덴과 NTT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줄 것이란 신뢰다. 또 총무성이 통신인프라를 넓힌 신덴덴의 역할을 잊지 않으리란 믿음이다.

 우리나라 후발 통신사업자들에 정통부를 향한 믿음이 있을까. 온세통신과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이 적자에 허덕일 때 관료들이 후발주자를 제대로 보듬어주었는가. 자칫 독과점으로 흐르기 쉬운 통신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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