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SI산업의 명예를 위하여

◆양승욱 정보사회부장 swyang@etnews.co.kr

 올 최대 SI프로젝트로 SI업체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해군과 공군 C4I 프로젝트 우선협상자가 결정됐다. 두 프로젝트의 규모는 산술적으로 합해도 물경 10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이다. 그러나 규모가 규모인 만큼 과거처럼 덤핑이니 로비니 하는 잡음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 결과발표가 다가오면서 기술력을 통한 정정당당한 승부보다는 경쟁업체의 약점을 외부로 의도적으로 유출하고 일부 언론이 사실확인 없이 이를 거들고 부추기는 상황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재연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SI업체들 스스로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고 이를 어긴 기업들에는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그만큼 SI산업이 안고 있는 병이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고질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현재 SI시장은 말 그대로 이전투구식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SI를 내걸고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시장의 경우 수요가 있더라도 그림의 떡이다. 내로라하는 그룹에서는 반드시 SI사업을 벌이는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그룹내 SI물량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SI업체들의 경쟁은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공공기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공공프로젝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탈락을 그대로 수긍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술력이나 수행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추후 사업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은 못먹어도 찔러나보자는 식의 대응을 불러온다. 이같은 막가파식 대응은 프로젝트마다 터지고, 이러다보니 서로 물고 물리는 악순환이 SI시장에 되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제 공공프로젝트는 수행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말이 공식화됐다. 하지만 수요가 공공기관에 한정된 상황에서 사업을 접기 이전에는 공공 프로젝트를 안할 수도 없는 것이 SI업체들의 고민이다. 최근 진행된 공공기관의 SI프로젝트 입찰에서 1원 입찰로 대표되는 덤핑이 난무하는 것도 이같은 구도속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어떻게 이같은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해야 할 것인가. 그 무거운 짐은 당연히 SI업체가 짊어져야 한다. 발주자인 정부나 기관에 현실을 반영한 사업예산을 책정하고 사업자 평가방식을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SI업체들의 출혈경쟁이 계속된다면 SI시장의 고질병은 치유하기 어렵다.앞에서는 출혈경쟁을 자제하자고 외치면서 뒤로는 무조건 프로젝트를 따라고 영업담당자를 내몰 경우 과거의 잘못된 유산은 그대로 답습될 수밖에 없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타났듯이 최근 SI업계에 일고 있는 자정노력이 단기간 안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근 IT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SI업계가 왜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SI업체들 스스로 로비나 상대방에 대한 비난보다는 기술력으로 승부하자. 그리고 결과가 나오게 되면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자. SI업체들의 이같은 모습이 출혈경쟁을 부추기는 발주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경고가 될 수 있음을 서로 공유하자. 덤핑과 로비, 흑색선전 등으로 얼룩진 SI업계가 하루빨리 명예를 되찾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