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외자들의 훈수

◆원철린 IT산업부장 crwon@etnews.co.kr

 

 오래 전 이야기다. 대국전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바둑의 황제로 불리는 조훈현 9단이 중요한 대국에서 바둑에 대해 조그마한 이해를 갖고 있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수를 깜박 잊어 패한 일이 있었다. 바둑판에 집중하다 보면 입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조 9단도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옆에 서 있는 초급이 입신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종종 국외자의 훈수가 더 나을 때가 많다.

 지금 정통부의 진대제 장관은 여기 저기서 통신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정통부의 정책과 관련해서도 아웃사이더의 많은 이야기들이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고 있다. 몇가지는 정책으로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좋은 이야기도 있다.

 A사장은 “통신사업자들의 경쟁을 시장원칙에만 맡겨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통부가 적극적으로 개입, 시장이 경쟁할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KT·SK텔레콤 등 유무선 선발사업자는 대학생이고 나머지 후발사업자는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출발선상에서부터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사각의 링도 체급별로 구분해 경쟁을 시키는데 정글의 법칙이 좌우하는 자유시장에서 무제한으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후발사업자들에게 모두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비슷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룰을 만들고 후발사업자들을 이끌어줘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가 설득력을 갖고 있다.

 또 다른 B사장은 지금은 유선이든 무선이든 포화상태여서 더이상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업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휴대인터넷 등과 같은 신서비스사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업체들은 현실적으로도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정통부가 정책을 질질 끌면서 업체들의 움직임을 가로막을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전두환 정부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이야기되는 정책이 컬러TV 방영 결정이다. 경기침체로 가전업체가 어려움을 겪자, 컬러TV 방영으로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를 열어주었던 것처럼 세금면세 등을 통한 수요진작도 있지만 새로운 서비스를 통한 수요진작도 정부가 할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주력 수출산업인 이동통신단말기와 관련된 이야기다. 단말기업체의 C사장은 “현재 단말기 수출은 CDMA보다는 GSM이 많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CDMA에 집중하고 오히려 GSM을 소홀히 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다보니 중소업체들이 이용할 수 있는 GSM 테스트사이트가 없어 중소업체들은 비싼 돈을 들여 수개월 동안 외국에 나가 장비 테스트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C사장은 “수십억원만 들이면 외국인들이 오고 가는 공항에 GSM테스트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면서 “업체 지원은 요란하지만 정작 업체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은 없다”고 정책당국자들에게 뼈아픈 지적을 하고 있다.

 현직에서 물러난 CEO나 한때 부도로 워크아웃까지 갔던 회사 CEO들의 이러한 지적들은 단순히 실패자들의 푸념으로만 여길 수 없다. 정통부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도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정통부의 정책이 좀 더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