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휴대폰업체 CEO인 A씨와의 최근 저녁식사 자리는 여러가지를 느끼게 했다. 회사 임원들과 컨설팅업체 사장까지 동석해 술잔이 오갔으며 업계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A사장은 이날만은 술기운 탓인지 가슴에 품은 말들을 토해냈다.
“하루는 은행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중국지역 수출이 어렵다던데 정상적인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알아봤더니 경쟁업체에서 부도 위험이 있다고 소문를 냈더라고요. 물론 주식시장에선 주가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보니 그런 악성 루머가 도는 것 아니겠냐”며 씁쓸해하면서도 울분을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 휴대폰산업은 재편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산업근간이 흔들릴 정도는 아닙니다. 충분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똘똘 뭉쳐야 합니다. 지금처럼 자중지란을 일으키다간 정말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A사장의 말처럼 우리나라 휴대폰산업의 경쟁력은 아주 높다. 세계적으로 휴대폰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핀란드·일본 등 몇몇에 불과하다. 더욱이 100여개 중소업체들이 휴대폰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 최강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휴대폰도 한국에서 만든다. 제조력과 기술력은 이미 검증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올들어 스탠더드텔레콤에 이어 이론테크가 부도를 내면서 업계의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래서 이날 동석했던 컨설팅업체 사장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국내업체를 중국에 매각하면 단기간에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3년이 지나면 중국은 이를 기반으로 한국 휴대폰산업 자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한국업체들끼리 서로 헐뜯고 과당경쟁을 하다간 이같은 일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저녁자리가 파할 때쯤 기자는 휴대폰업계가 동업의식만 갖는다면 지금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못내 아쉬웠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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