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영웅 사카무라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

 사카무라 겐 도쿄대 교수는 ‘잃어버린 10년’ 이후 일본이 배출한 최고의 IT 영웅이다. 일본 언론은 그를 21세기 일본 부흥의 기치로 내건 u재팬을 이끌 최고의 리더로 꼽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10년’은 일본이 지난 90년대 IT기반의 신경제를 내세웠던 미국에 경제 주도권을 내준 시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노무라연구소식 표현이다. 사카무라는 이 ‘잃어버린 10년’을 자신이 주창한 일본형 유비쿼터스컴퓨팅을 통해 되찾아 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주 u코리아포럼 세미나 연사로 내한했던 사카무라는 유비쿼터스컴퓨팅의 실체에 목말라 하던 한국인들에게 “유비쿼터스는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84년 도쿄대가 추진한 ‘트론(TRON)’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부터다. TRON 프로젝트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실시간 운용체계(The Real-time Operating system Nucleus) 개발이 골자다. 당시 일본은 미국보다 수십년 늦게 시작한 컴퓨터설계기술 분야에서 IBM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자·기계·자동차 분야에서는 이른바 일본식 품질경영을 통해 50∼60년대 대량생산체제에 안주해 있던 미국을 앞질렀던 터였다.

 내친김에 컴퓨터 분야에서도 미국을 눌러보겠다는 야심 속에 추진한 것이 TRON 프로젝트다. 전자제품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는 컴퓨터 결정판을 순수 일본 기술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 팀장인 사카무라가 내세운 모토가 ‘모든 물건에 컴퓨터를’이다. 일본인들은 이 모토가 오늘날 미국에서 유비쿼터스컴퓨팅 창시자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마크 와이저의 91년판 ‘차세대 컴퓨터(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 개념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이제는 보편적 개념이 된 ‘어디에서나 컴퓨팅(Computing, Everywhere)’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TRON이 유비쿼터스컴퓨팅의 원조라는 주장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사고의 중심에 사카무라가 있는 것이다.

 사카무라는 지난 18년간의 TRON 개발 경험을 자신이 지난해 설립한 YRP유비쿼터스연구소에 쏟아붓고 있다. YRP에서는 이미 외형이 0.4㎜에 불과한 칩를 개발해 접시나 자동차 열쇠 등에 삽입하는 실질적인 유비쿼터스컴퓨팅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는 이 칩 한개의 값이 아직은 100엔이나 되지만 5년내에 1엔까지 떨어뜨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YRP가 몰두하고 있는 또다른 사업은 유비쿼터스컴퓨팅 플랫폼의 국제표준을 겨냥한 ‘T-엔진’의 개발이다. 일본 정부까지 막대한 자금지원에 나선 이 프로젝트에는 히타치·미쓰비시·삼성·선·ARM 등 세계적인 기업도 앞다퉈 참여하고 있어 그 실현 가능성을 짐작케 해준다.

 방한중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 그는 미국식 IT에 대한 반감과 자신의 일본형 유비쿼터스컴퓨팅에 대한 우월감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의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당대 최고의 IT 비저너리로서 그리고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그를 미국으로부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영웅을 알아보며 영웅을 키울 줄 아는 일본의 정서가 재삼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