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신정부의 통신정책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

 지난 주말 통신시장에는 두 가지 빅 뉴스가 겹쳤다. 한달이 넘도록 질질 끌던 정통부 실장급 인사가 단행됐다. 같은 날 온세통신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아마도 신임 정통부 실장들은 축하인사에 앞서 통신시장 격변에 따른 신정부 통신정책의 지향점을 보여달라는 시장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릴지도 모른다.

 일단 정통부 수뇌진의 면면을 보면 무언가 그림이 나올 법하다. 진대제 장관은 최고의 민간 CEO 출신이다. 산업정책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변재일 차관은 풍부한 행정경험과 조정력, 발군의 정보화 기획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노준형 기획관리실장은 전략적 사고에 강한 인물이고, 석호익 정보화기획실장은 자타 공인의 정통 정책통이다. 후속 국과장 인선이 미뤄지고 있지만 정통부 상층부에는 통신·산업·정보화정책 전문가들이 균형있게 포진한 셈이다.

 신정부 출범 이후 정통부의 정책 방향은 이미 천명됐다. 디지털TV 등 차세대 전략상품을 집중 육성,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5∼10년 후까지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의 일이다. 민간에서 보여준 진 장관의 능력과 정통부 관료들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그럴 듯한 ‘작품’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통신정책은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정통부가 그간 통신정책에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산업정책이 홀대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정부의 산업 드라이브는 정책의 균형이란 차원에서 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통신정책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조율이 필요하다. 국가경제의 큰 틀에서 산업과 금융정책까지 감안, 입안해야 할 만큼 광범위하다. 덕분에 산업정책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치밀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 지향성이 요구된다.

 당장 온세통신의 예가 증명한다. 온세의 법정관리는 극단적으로 통신 경쟁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 이후 지난 10여년간 일관되게 이의 착근과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도모했다. 심지어 통신 3강이니 비대칭 규제까지 들고나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KT의 시장 지배력만 강화될 뿐 데이콤·하나로통신·온세통신·두루넷 등 후발주자들은 모조리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동전화시장에서도 이미 한솔PCS가 인수합병으로 사라졌다.

 원인은 다양하다. 선발 기업들은 ‘시장의 힘’과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후발주자들은 “정부가 최소한의 경쟁환경도 조성하지 않은 채 사업 면허만 주고 내팽개친 결과”라고 강조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두 가지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정부는 선발업체의 교묘한 기득권 활용수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다. 어쩌면 ‘묵인(?)’했을 수도 있다. 후발주자들은 가격과 정부에 기대는 것 외에 승부를 가를 ‘필살기’가 부족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다. 신정부 통신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어떤 것이지 밝혀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정책을 들먹이기 이전에 시장과 기업들도 알아야할 ‘권리’가 있다. 여전히 경쟁체제는 3개 이상의 사업자 정립이 뒷받침돼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부터는 철저히 시장의 선택에 맡길 것이지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만약 전자라면 소위 유효경쟁체제 확립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후자라면 사업자들에게도 명확한 선을 긋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에 골몰하는 것이 옳다.

 총론은 바람직했지만 각론의 소홀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거대 통신사업자들의 속수무책 부실화는 우리 경제에 짐만 될 뿐이다. 시장과 기업이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성 제시는 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