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추대와 경선`의 차이

◆양승욱 엔터프라이즈부장 swyang@etnews.co.kr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한소협)의 차기 회장으로 김선배 현대정보기술 사장이 추대됐다. 차기 회장은 오는 21일 개최되는 정기총회에서 정식선출되지만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내정자가 차기 회장을 맡아 2년간 협회를 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회장 선출은 IT업계는 물론 전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과거와 달리 두 후보가 나서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경선에 따른 후유증이 예상되지만 예상과는 달리 승자와 패자 모두 회원사들의 결정을 수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 관련업체들의 모임인 단체의 장은 지금까지 추대형식으로 이뤄져왔다. 또 대부분 업계의 대표성을 갖는 기업의 장이 맡아왔다. 인물보다 회사의 규모에 의해 회장이 결정된 것이다. 이번 회장의 임기가 끝나면 다음에는 어느 회사 대표가 회장이라는 식이다. 따라서 회장단에서 차기 회장을 추대하고 본인이 이를 승낙하기만 하면 모두 끝난다.

 그러나 단체장을 맡게 되면 싫든 좋든 이에 따른 의무사항을 이행해야만 한다. 대표적으로 협회의 살림을 꾸려가기 위한 지원금을 내놓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기업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는 단체장이라는 이름을 빌어 회원사들의 이익보다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회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업계를 대표한다는 명예의 자리일 뿐이다. 말 그대로 잘해야 본전인 자리인 셈이다.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기 힘든 상황에서 권한도 없는 데다 막대한 지원금까지 내놔야 하는 단체장을 맡아 자신의 기업보다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회장임기가 만료될 시점이 되면 차기 회장을 찾아 이 기업, 저 기업을 기웃거려야 하는 협회상근자들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뤄진 경선이기에 소프트웨어산업계에 던지는 파장이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선으로 선출된 회장은 과거 얼굴마담의 역할에 그친 회장과는 달리 자신을 뽑아준 회원사들에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하기 싫었는데 당신들이 맡으라고 해서 억지로 맡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최소한의 임무마저 방기해온 과거와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소협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회원사만 해도 1200개에 달하는 대규모다. 협회는 지난 88년 설립 이후 명실공히 소프트웨어업계의 이익단체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애로점을 취합, 정책에 반영토록 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민간단체로 자리잡아왔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관련 정책집행기관인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등장하면서 한소협의 입지는 점차 위축돼왔다. 한소협 회장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떨어진 것도 소프트웨어업계의 구심점이 협회가 아닌 진흥원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됐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협회 스스로 일을 찾기보다 진흥원의 일부 업무를 대행해주면서 사실상 업체들의 모임인 협회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난마저 제기돼왔다.

 그러나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한소협 스스로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진흥원보다 한 발 앞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협회의 과제다.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업계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이슈를 개발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선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새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