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규 유즈드림 사장 tanlee@uzdream.com
무협을 소재로 한 온라인게임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국내에도 무협의 세계를 즐기는 마니아가 적지 않지만 중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무협시장임에 틀림없다. 무협작가 좌백이 대만과 중국을 차례로 방문한 후 “중국인들에게 무협은 문화코드 이상인 생활코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중국에서 무협적인 세계관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나타내고 있다. 중국 문화권 내에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지 통용될 수 있는 것이 무협이라는 코드다. 그만큼 무협시장은 상상보다 거대하다.
무협을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개발사가 거대한 무협시장을 보고 중세풍 팬터지 세계를 그린 게임을 개발하고 있을 때 중국 문화권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한 것이 온라인 무협게임 ‘무혼’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모두 상용화되고 있는 이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기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과연 무엇이 진정한 무협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진정한 무협세계를 어떻게 온라인 게임으로 제대로 구현하는가 하는 문제는 더더욱 어려웠다.
무협은 ‘무(武)’와 ‘협(俠)’이 합쳐진 단어다. 두 단어의 뜻은 전혀 다르다. 무는 흔히 창(戈)을 멈춘다(止)는 뜻이라고 말한다. 갑골문을 전공한 김경일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김경일 교수는 무(武)라는 글자는 창을 굳게 쥐고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인 자세, 즉 언제라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세를 가리키는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협(俠)은 더 복잡하다. 무협소설계의 거장인 김용의 ‘사조영웅기’에서 곽정을 대협이라고 일컫는다. 대협이라고 불리는 근거는 개인의 욕심을 차리지 않고 항상 대의에 입각해서 멸사봉공하는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곽정의 스승인 구지신개 홍칠공도 협객으로 그 역시 정의로운 일에만 무력을 행사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무를 구현하는 것은 쉽다. 무기를 손에 쥐고 필드로 나가 싸움을 시작하면 무는 50% 이상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협을 구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협은 행위 자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괴롭히는 무뢰한이 있을 때 그를 물리쳐 준다면 협의의 행동을 한 것이 된다. 이때 무뢰한과 싸운 것 자체가 협의가 아니라 무뢰한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을 구해준 것이 협의로 작용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안에서 초보자들을 잘 도와주고 PK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응징하는 등 협의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게임 시스템이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 시스템 자체에서 협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한 무협게임은 반쪽짜리 무협 게임일 수밖에 없다.
완결된 스토리구조를 갖는 기존 패키지 게임이라면 이런 걱정이 있을 필요가 없다. 강제로 캐릭터를 특정한 상황에 밀어넣고 협의와 불의의 행동을 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 코에이에서 내놨던 ‘삼국지 조조전’과 같은 게임은 선택의 결과에 따라 전혀 다른 엔딩으로 게임을 이끌어가게 돼 있다. 문제는 네버엔딩스토리인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런 식의 보상이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모든 온라인 게임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힘의 과시를 하는 PK시스템과 그 피해에 대해서 다시 피의 보복을 하기 위해 좋은 아이템을 현금 거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도 사실 따지고보면 게임 안에 협의 구조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일부 온라인 게임에서는 적절한 보상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조차 무의 구조로 다시 들어가버리곤 했다.
진정한 무협세계를 그린 게임을 만들고 중국을 위시한 무협시장을 겨냥한다면 무만 가지고는 불완전하다. 협을 간판으로 내걸어야 앞에서 말한 거대한 무협시장을 얻을 수 있다. 게임안에 고품격의 문화가 들어있다고 중국인들이 느낄 때 중국시장을 휩쓰는 것은 머나먼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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