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미·일 수퍼컴퓨터 경쟁 후끈

 이 슈퍼컴퓨터는 연산속도가 아주 빨라 지구가 속한 은하계 별들의 숫자만큼 많은 계산을 1초 만에 해낸다. 이 슈퍼컴은 크기도 커서 비행기 격납고만한 빌딩에 들어가 있다.

 초당 35조6000회의 연산을 수행하는 이 슈퍼컴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일명 ‘지구 시뮬레이터’다. 지구 시뮬레이터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에 비해 5배 정도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5대를 합친 것만큼 빠르다.

 3억5000만달러짜리 지구 시뮬레이터는 일본 과학자들에게 복잡한 시뮬레이션과 다양한 변수를 계산해야 하는 기후조사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정확해졌다는 의미지만 일본 슈퍼컴퓨터와 경쟁하는 미국으로서는 정신차리라는 자극제다. 미 정부마저 지구 시뮬레이터가 지난 3월 작동되자 세인의 관심이 높은 이 분야의 미국 지배가 끝났다고 받아들였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 과학자들이 지구 시뮬레이터 때문에 기후 연구에서 일본보다 10∼100배 뒤졌다고 분석했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기후과학 연구에서 선두를 빼앗겼다”며 “컴퓨터과학이 미 에너지부의 에너지 및 국가안보 임무에 공헌해온 점을 고려하면 선두를 빼앗겼다는 의미는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지구 시뮬레이터는 수세기 이후까지 자연재해를 예측하기 위해 해양온도·강우·지각변동 등을 추적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도쿄 남부 교외지역에 안치된 지구 시뮬레이터를 구성하는 컴퓨터들은 미국 뉴욕과 라스베이거스를 이을 수 있을 정도로 긴 1900마일 길이의 케이블에 의해 건물바닥 밑으로 연결돼 있다. 이 컴퓨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초마다 3500제곱피트의 공기가 건물을 순환한다.

 지구 시뮬레이터 센터의 사무국장 사토 데쓰야는 “이 컴퓨터는 마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예전의 시뮬레이션보다 100배 선명하게 기후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도쿄 소재 NEC가 만든 이 슈퍼컴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태풍경로와 화산분출을 예측할 수 있으나 아직도 지진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컴퓨터는 특정 댐이나 건물, 고속도로를 보강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진앙 후보지 선정과 지진피해 가상도 작성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다. 또 이 슈퍼컴은 앞으로 수백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15% 감축하고 바다 수위가 계속 높아질 경우 어떤 도시가 바다 밑으로 잠길지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슈퍼컴이 비싸긴 해도 지진이 많은 자국의 재난피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강변한다.

 이 컴퓨터의 가능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구 시뮬레이터와 같은 강력한 컴퓨터는 에이즈 등 역병과 생화확 공격 후 바이러스의 확산 예상경로를 계산하며 약품과 인체의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을 가능케 함으로써 수백만달러의 실험비용을 절약해주고 아울러 신약개발 속도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사토 사무국장은 그러나 “정부가 이 컴퓨터의 소중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구 시뮬레이터의 의미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 과학연구실의 앨런 에델만 교수는 “컴퓨터의 속도가 높아질 때마다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이 점점 더 많이 열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NEC는 지구 시뮬레이터의 놀라운 성능을 실현하기 위해 ‘벡터 프로세싱’이라는 구식기술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미국 제조회사들과 슈퍼컴 설계자들은 이 기술을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구식기술로 여겨 무시해왔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지구 시뮬레이터 개발에 자극을 받아 이를 능가하는 슈퍼컴을 기업들에 주문한 상태다.

 IBM은 2억9000만달러에 2대의 슈퍼컴퓨터를 정부에 공급하기로 계약함에 따라 지구 시뮬레이터보다 3배 정도 빠른 100테라플롭스의 계산속도를 갖춘 슈퍼컴을 오는 2004년께 완성하고 슈퍼컴퓨터 1위도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애틀 소재 크레이도 오는 2004년까지 샌디아국립연구소에 핵무기 시뮬레이션용 슈퍼컴 1대를 9000만달러에 제공하고 2010년까지 정부에 초당 1000조회를 연산하는 페타플롭스급 슈퍼컴퓨터 1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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