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섭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tslee@ijnc.inje.ac.kr
주한 미군의 여중생 압사사건 이후 미국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 교류협력과 평화통일에도 미국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6·15선언 이후 최근 남북관계는 대화가 활성화되고 경제·군사·사회·문화·체육·이산가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종 합의사항이 실천되는 등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또 북한은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신의주 특별행정구·금강산관광지구·개성공업지구를 각각 지정하고 중국·러시아와 전통적 우호 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일본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남북 교류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대내외적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남북은 지난 11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 회의를 통해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연결과 투자보장·청산결제·이중과세방지·상사분쟁해결 등 경제협력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4개 합의서를 이른 시일 안에 발효시키기로 했다. 또 남북경제협력제도실무협의회를 통해 4개 합의서의 후속조치와 통행·통신·원산지 확인 등의 문제를 협의하고 개성공단건설 실무접촉을 통해 통행·통신·통관·검역합의서 등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물론 개성공단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 보장, 적정한 토지분양가와 임금수준, 용수·통신·전력과 같은 기반시설 구축 등 여러 선결과제가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근의 상호 합의사항을 남북이 성실히 이행해 나간다면 우리 기업인들이 보다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정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만큼 남북 합의사항은 성실히 이행돼야 하며 특히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은 개성공단 등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다. 또 철도·도로망 연결은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긴장완화로 가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평화와 협력의 길이 최근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북미 갈등에 의해 다소 진통을 겪고 있다. 어떻게 보면 최근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를 보이면서 중국·러시아·일본·남한·유럽 연합 등 주변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개선과 협력을 추구하고 있는데 유독 미국만이 그에 역행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 문제를 빌미로 미국이 남북관계를 포함해 북한과 주변국간의 관계개선에 일정한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 등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핵 문제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미 행정부 관리들의 입장표명이 그것이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빌미로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 작업과 군사분계선(MDL) 통과 문제에 개입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 결과 평화와 협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동해선 임시도로망 연결사업이 다소 지체됐다. 핵 문제로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도 무산됐다. 미국이 평화와 협력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와 협력, 통일을 위해서는 냉전시대의 종속적 한미관계를 21세기 탈냉전 시대에 맞게 자주적 관계로 재편하고 남북협력, 남북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비난이 되고 있는 미국의 일방외교에 더이상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사업은 그와 관계없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핵 문제로 북미 관계가 갈등상황에 있지만 북한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바 남북이 공조한다면 교류협력사업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남북경제협력제도실무협의회와 개성공단건설실무접촉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미국 역시 평화와 협력이라는 한반도의 막을 수 없는 현실변화를 홀로 외면하며 계속 역행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협력은 이제 더이상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며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결국은 미국 역시 이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 변화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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