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세계 TV시장에서 소니의 아성은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TV시장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트리니트론과 베가를 TV의 대명사로 만든 회사가 바로 소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처럼 막강한 기술력과 마케팅력 등 소니가 갖춘 강점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건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 수익 등 현재 나타난 지표상으로는 LG전자와 소니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LG전자는 꾸준한 연구개발로 세계 최초로 60인치 PDP TV, 30인치·42인치 LCD TV 등 첨단제품을 잇따라 쏟아낸 잠재력 등으로 소니 극복에 나섰다. 적어도 디지털TV 분야의 실적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1년 회계연도에서 소니는 5조3104억엔의 총 매출을 기록, 흑자기조를 이어갔다. 마쓰시타, 후지쯔, NEC, 도시바 등이 2000억∼3000억엔대의 적자를 낸 가운데 소니만이 흑자를 기록해 저력을 과시했다. 소니의 TV사업 부문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6.3%(442억엔) 늘어난 7479억엔을 기록했다.
디지털 시장의 본격 개막에 힘입어 미국, 중국에서 대화면 프로젝션TV 판매가 급상승한 데다 엔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경쟁력 제고로 미국·유럽시장에서의 CRT TV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소니는 지난 2000년 1억1700만대 규모의 전세계 CRT TV시장에서 총 1130만대를 판매하면서 10%대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1009만대를 판매해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프로젝션TV, PDP TV 등 디지털TV를 포함할 경우 전세계 시장에서 25∼3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반면 LG전자의 2001년 TV부문 매출은 내수와 수출을 합해 1조2315억원으로 소니 TV 부문 매출의 7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LG전자는 급격히 전개되는 디지털시대로의 이행과 이에 따른 시장 성장성에 눈을 돌리면서 오히려 지금이 소니와 미래 디지털TV 시장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2006년까지 디지털방송으로의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세계 최대의 디지털TV시장인 미국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판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TV는 LG전자가 기업의 사활을 걸고 준비해온 분야다.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23개 연구소 가운데 디지털TV연구소, 디지털디스플레이연구소, 디지털미디어연구소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 특화된 3개 연구조직 외에 10여개 연구소도 이 분야 연구에 가세하고 있다.
LG전자의 기술력은 지난해 3월부터 일본 선발업체인 FHP와 거의 같은 시기에 PDP 양산공장을 가동, 최근 개발한 디지털TV 수신용 시스템온칩을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해 이를 과시했다. 이미 LCD TV에서 20%대의 점유율을 기록,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만큼 차세대 신개념 MD 프로젝션TV 등에서도 세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LG전자가 디지털TV에 보이는 열정과 창의력도 소니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97년 디지털TV용 핵심 칩세트 개발, 98년 미국규격 64인치 디지털TV 개발, 유럽규격 디지털TV 양산, 99년 양방향 데이터방송 규격(ATVEF)에 따른 시스템 개발, 2001년 미국 PBS와 공동으로 개발한 디지털데이터방송 실시 성과 등이 모두 세계 처음이다. 디지털TV의 3대 요소인 칩,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해 디지털TV에 관한 한 ‘1등 LG’ 실현이 요원한 일은 아니라는 게 LG전자의 자신감이다.
그러나 일본 전자업체의 간판인 소니의 기술력과 저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지난 60년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TV 개발, 68년 세개의 전자총을 하나로 모은 트리니트론 시대 개막에 이어 90년대 후반 디지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선명·대화면으로 요약되는 프로젝션TV 베가로 소비자에게 또다른 TV의 세계를 연 업체도 소니다. 미국 텔레비전아카데미가 TV방송분야에서 우수한 공적을 인정해 수여하는 에미상을 27회나 수상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소니를 있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창조적 CEO들이 보여 준 미래산업에 대한 창의력과 열정이다. 모리타 아키오, 이부카 마사루, 오가 노리오, 이데이 노부유키로 이어지는 소니 회장들의 면면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들 최고 경영진의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은 소니가 흑자기조를 유지하면서 ‘불패신화’를 이어가는 또 다른 비결이기도 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율이 여타 일본과 미국 기업들의 7∼10%를 앞지른다.
기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LG전자도 디지털TV 분야 관련 종사인력이 2000여명에 이를 만큼 R&D 분야에 대한 투자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비도 전자부문에만 2003년 올해보다 20% 증가한 1조8000억원을 투자해 선행기술을 확보하고 이 가운데 75%인 1조3500억원을 디지털TV, PDP/LCD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 투자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로 LG전자는 디지털TV, 특히 PDP TV 분야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분명 세계 TV시장의 강자인 소니는 아날로그TV 때부터 주도하고 있는 브라운관TV와 CRT 프로젝션TV에서는 업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LG는 소니와 달리 디지털TV 기술에서 다양한 자체솔루션을 갖고 있어 미국 디지털TV 시장의 본격 성장세에 따른 역량집중으로 2006년 ‘글로벌 톱’이 가까워졌다고 보고 있다.
소니는 150억달러에 이르는 브랜드가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결코 넘기에 녹녹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디지털TV에 관한 한 LG전자에 소니는 결코 극복하기 어려운 대상은 아니다. LG전자는 지난 99년 미국의 제니스사를 인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킨 후 북미 지역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이제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던 제니스는 올해 디지털TV의 판매호조, 로열티 수입 등에 힘입어 지난해 2억5000만달러보다 20% 늘어난 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 최초의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중시되는 요즘 디지털TV의 3대 요소를 고루 갖춘 LG전자의 동력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TV분야 강자인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 펼쳐질 한판승부가 기대된다.
◆백우현사장 LG전자 CTO
“앞으로 세계 디지털TV 시장은 한국업체들이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PDP TV의 경우 매년 20%씩 가격이 인하될 것입니다.”
LG전자의 CTO를 맡고 있는 백우현 사장(52)은 세계 디지털TV 시장의 상황을 이같이 전망하면서 60년대 이후 세계 TV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소니에 결코 뒤지지 않겠다는 LG전자의 디지털TV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LG전자는 미국 언론으로부터 ‘디지털TV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우현 사장을 스카우트, 세계 디지털TV 시장에서의 굵은 획을 긋겠다는 전략을 수년간 소리없이 추진해 왔다.
LG전자에서 그만큼 세계 디지털TV 전자업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열정을 가진 인물도 찾아 보기 힘들다. MIT에서 통신제어시스템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제너럴인스트루먼트와 퀄컴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그는 미국 디지털TV 규격 결정과 관련해 산업계와 학계 연합표준화기구인 기술대연합에 참여해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90년 이래 차세대 TV인 HDTV는 규격과 관련된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미국, 유럽, 일본 디지털TV 규격이 풀디지털로 결정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개발한 디지털TV 신호의 압축과 암호화방식 디지사이퍼와 비디오사이퍼 시스템은 현재 미국에서 디지털 케이블과 위성방송 표준이 됐다.
에미상 수상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위성방송통신협회에서 디지털TV 규격과 표준화에 기여한 공로로 방송통신분야 최고권위상인 클라크상을 수상한 백 사장이 포진하고 있는 LG전자는 당연히 디지털TV 기술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실제로 그가 이끄는 연구소와 개발팀은 모두 이 회사가 표방하는 1등 디지털LG에 바탕한 디지털전문가들로 포진해 있다.
백 사장은 국내 기술력에 대해 “최근 외국의 유수업체가 LG칩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해올
정도여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고 칩과 SW기술력까지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 연구개발만이 디지털시대의 전자회사를 일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소니의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와 이부카 마사루에 뒤지지 않는 창조적 열정을 갖춘 엔지니어로 꼽힌다.
그런 그가 디지털TV에 쏟는 열정이 PDP연구를 시작한 지 25년이나 지난 소니에 뒤지지 않는 LG전자를 세계일류 디지털TV회사로 개화할 날도 얼마남지 않은 듯하다.
◆안도 구니타케 소니총괄 사장
인류 텔레비전의 역사 속에서 소니를 제외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과 함께 소니를 이끌고 있는 안도 사장은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전자왕국 소니호의 순항을 이끌고 있다.
안도 사장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소니스타일을 강조한다. 소니스타일은 고객의 요구(needs)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을 만드는 데서 한 발 나아가 기술, 디자인,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안도 사장은 ‘소니는 하나의 창조가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지 않은 것을 창조한다’는 기업문화를 창출해 나가며 창업주의 창업정신을 경영에 잘 반영해 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안도 사장은 ‘언제나 세계 최초, 일본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면서 전세계인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소니의 드림키드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장본인으로 불린다.
이런 최고 경영진의 의중은 IT경기침체, 장기불황 및 후발업체들의 추격으로 대부분의 일본 가전업체들이 적자를 봤던 지난해 ‘역시 소니’라는 탄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간판급 전자업체인 마쓰시타가 창사 65년만에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고 후지쯔, NEC, 도시바가 각각 3825억엔, 3120억엔, 2540억엔의 적자를 내는 등 일본 전자메이커들의 자존심이 많이 구겨졌다.
소니는 지난 88년 트리니트론시스템을 더욱 새롭고 고난도 기능의 단계로 발전시킨 평면 트리니트론을 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CRT보다 11배 더 평평한 제품으로 디지털시대를 미리 예측한 소니의 기술력과 미래시장을 예측하는 결정판이었다.
안도 사장은 첨단 디지털시대를 맞아 ‘모두 연결한다’는 개념의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Ubiquitous Value Network) 전략으로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채널서브를 기반으로 한 소니의 코쿤 홈네크워크가 우리들의 일상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지 기대된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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