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삼성.LG `일등주의`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생산라인의 직원에서부터 CEO까지 밤잠 설쳐가며 개발하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한국산이라는 ‘네임 밸류’ 때문에 값싼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저가격에 내다 파느니 차라리 창고에 쌓아둘지언정 팔지 않겠다.”

 삼성의 ‘휴대폰 신화’를 창출한 이기태 사장은 단호하다. 그와 직원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고 자신과 조직을 채찍질했다”고 한다. 강한 프라이드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된 긍정적 일등주의의 전형이다. 삼성은 세계 고가 휴대폰시장을 석권했다.

 ‘일등주의’는 삼성의 트레이트 마크다. 오죽하면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는 광고 카피까지 나왔을까. 사실 삼성은 상품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일등을 강조한다. 한국 제일이어야 버틸 수 있고 세계 제일의 자리에 올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다그친다. ‘삼성맨’들은 입사 때부터 이같은 환경에서 자신을 담금질하고 세계와 경쟁한다. 일등주의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삼성전자만해도 세계 랭킹 1위 품목이 반도체를 비롯, 9개나 된다. 상반기 수익률도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세계 최고 IT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삼성의 일등주의’가 언제나 찬사와 박수의 공간에 머물지 아무도 모른다. 드러난 화려한 실적에 가려져 있던 일등주의의 어두운 면이 한 발만 삐긋하면 한꺼번에 표출될 수도 있다. 일등주의는 자칫 엘리트 의식으로 흐르게 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국민적 반감을 사고 정서적 공격 대상이 됐다. 삼성이 ‘안주’하는 순간 입시경쟁을 방불케 하는 조직원간 초고강도 경쟁의식에 따른 불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재계뿐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삼성의 독주에 대한 전방위 견제심리가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 일등주의가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독선과 특권, 전횡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LG의 이미지는 삼성과 다르다. 삼성이 똑똑하지만 빡빡해 보인다면 LG는 부드럽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전체적인 실적은 뒤지지만 LG가 삼성에 비해 선택적 친화력이 뛰어난 기업으로 다가온다. 이런 이미지가 과연 기업으로서 좋은 것인지는 별개로 하자. 화제를 모으는 것은 LG가 최근 ‘정색’을 하고 1등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사실이다. 구본무 회장이 사장단들과 회합, 전자 주요부문에서 한국 1위, 세계 톱의 자리를 겨냥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TFT LCD나 차세대 단말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개발 투자액 등 미래경영 비전도 함께 ‘선포’했다.

 기업이 1등을 하겠다는 목표는 너무도 당연하다. 마치 이익을 내야 한다는 명제와 같다. 하지만 LG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기업과 조직문화에도 1등주의를 뿌리내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삼성의 예를 연상시킨다. 사실 LG쯤 되면 자금이나 맨파워, 노사문화 등 어느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한국 2대 재벌로 성장한 저력이 이를 증명한다. LG 수뇌부의 1등주의도 치열해져만 가는 지구적 경쟁환경 속에서 1등을 향해 좀더 긴장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자기고백으로 볼 수 있다.

 LG가 시장과 조직문화에 1등주의 드라이브를 건다면 1차적 격돌은 삼성과 벌이게 된다. 지금도 자존심을 건 혈투를 벌이고 있는 판에 앞으로가 걱정이다. 벌써부터 몇몇 분야에서는 서로 자기가 1등이라고 티격태격이다. 언론을 통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비판과 비난이 다르듯 경쟁과 싸움은 구분돼야 한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과 LG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진정한 1등주의다. 행여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발목잡기나 제살깎기라는 퇴행적 1등주의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