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는 이 미묘한 냄새를 알아채지 못한다. 반면 경험이 많은 이들은 전해질과 콘덴서, 오래된 전자회로판과 옛날 전자기기들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를 맡으면 마치 파블로프가 실험한 개처럼 거의 반사적으로 과거를 떠올린다. 과학기술자들은 2년 전 문을 연 마운틴 뷰에 있는 컴퓨터역사박물관에 들어설 때마다 이러한 향수를 느낀다. 이 박물관을 장식한 꽃다발들이 오히려 최초의 컴퓨터나 기술 원로들만이 알고 있는 왕년의 첨단기계 작동법 등에 대한 기억을 앗아가고 있다.
존 툴 컴퓨터역사박물관 관장은 기술 원로들만이 맡는 이 냄새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으나 그 냄새를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는 이 냄새가 이 박물관을 임시 수용하고 있는 모펫 필드에 있는 컴퓨터 유물 저장시설에서 맡을 수 있다는 점과 바로 이 냄새가 이상하게도 기술과 인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곳은 컴퓨터의 일천하지만 다양한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컴퓨터 전문 박물관이기 때문에 으레 기대할 수 있는 차가운 금속과 전선, 단추, 스위치 등등이 대량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 최고의 컴퓨터에는 거기에 걸맞은 인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컴퓨터란 컴퓨터를 문명의 이기로 개발한 인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얘기다.
마이클 윌리엄스 수석 박물관매니저는 “이 박물관은 컴퓨터에 관련된 인간들의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고 밝혔다.
그는 5명의 동료들과 함께 박물관 방문객들을 안내하면서 컴퓨터에 얽힌 잊지 못할 인간사들을 전해주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헨리 홀러리스와 그의 인구조사 통계 기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의 인구조사 통계 기계 모조품이 이 박물관 한 구석에 놓여 있다.
홀러리스는 1880년대 말 미 정부가 주최하는 한 경연대회에 이 기계를 출품했다. 당시 인구 조사는 조사결과를 수작업으로 통계를 내야 했기 때문에 1880년 인구조사의 경우 조사결과가 나오는 데 거의 7년이 걸렸다. 따라서 통계를 구하는 7년 동안 인구가 크게 변동해 통계치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홀러리스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의 계산 기계는 천공카드와 핀 프레스, 수은 등을 사용한 기계로 1890년 인구조사를 3년만에 끝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구조사가 10년마다 실시됐기 때문에 그의 기계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었다. 그는 따라서 다른 사업 특히 선박운송업에 천공카드 계산 기술을 판매한 후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컴퓨팅-태뷸레이팅-리코딩을 통해 사무용 기계를 판매하는 데 주력했다. 홀러리스는 결국 백만장자가 됐으며 1911년 자신의 사업체를 매각했다. 그로부터 13년 뒤 T J 왓슨이라는 한 세일즈맨이 이 회사를 국제사무기기, 오늘날 약어로 더 잘 알려진 IBM이라고 사명을 바꿨다.
샌프란시스코 벨몬트에 있는 칼몬고등학교 리키 볼린 군은 “이 박물관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컴퓨터 박물관 견학이라면 그냥 컴퓨터 같은 것들에 대한 장황하고 지루한 설명이나 듣는 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렇게 재미있고 멋진 이야기들이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감탄했다.
볼린은 대형 컴퓨터 ‘세이지(SAGE)’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이 박물관은 거대한 세이지의 5%만을 전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이지는 여러 컴퓨터들을 한쌍씩 묶어 사용되며 그 크기는 대형 경기장만하다. 세이지 컴퓨터는 미·소 냉전시대에 북극 상공을 비행하다 북미 영공을 침범하는 소련 폭격기를 찾아내기 위해 설계됐다. 46대의 세이지 컴퓨터가 미국과 캐나다 지하벙커에 설치됐으며 처음으로 이중 백업시스템이 도입됐다. 이 큰 세이지 컴퓨터는 오늘날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작동 가능해질 때쯤 되자 진부해졌다. 소련 최고의 무기는 1958년부터 더 이상 폭격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만달러를 들인 세이지로선 추적할 수 없는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바뀌었다. 윌리엄스 수석매니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세이지가 국민들을 안심시켰기 때문에 1980년대 초까지 이를 계속 운용했다고 밝혔다.
세이지의 핵심 부품 중 하나는 미국이 80년대 훨씬 이전에 생산을 중단한 진공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세이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세이지가 경계하는 바로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진공관을 수입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다른 중요한 컴퓨터 중에는 2차대전 중 나치 독일 잠수함에서 사용되던 이니그마(ENIGMA)라는 기기와 에니악(ENIAC), 조니악(Johnniac), WISC, 크레이3 (Cray-3), PDP1 등이 있다. 이 박물관은 전시물 관람 외에 컴퓨터산업 유명인사를 초청, 강의와 패널토론 기회도 제공하며 펠로십을 수여하기도 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도서관도 개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사실 현재로서는 박물관이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모펫필드 비행선 격납고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저장시설은 2차대전 이전에 건립된 1만2000평방피트의 창고로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는 곳이다. 이곳 전시물은 박물관 총 전시물의 10% 미만밖에 안된다. 이 박물관은 지난 수년 동안 3000점 이상의 유물과 영화 2000편, 사진 5000장, 일렬로 정리했을 때 2000피트에 달하는 서류들을 수집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지 못한 나머지 90%는 팔렛트에 얹혀져 창고 두 곳과 건물 세 동 여기 저기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 있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이 격납고 입구 앞 3에이커 땅 가운데 12만평방피트를 영구 박물관 부지로 확보 개발하기 위해 현재 기금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모금된 기금은 목표액 1억달러의 절반 정도다. 목표기금의 반은 새 박물관 건설비로, 나머지 반은 새 박물관 일상 운영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영구 박물관은 내년 부지 착공에 들어가 2005년 완공될 예정이다.
<제이 안 기자 jayahn@ibiztoday.com>
사진(위)-1946년 개발된 진공관을 사용한 최초의 컴퓨ㅜ터 `에니악`
사진(아래)-1949년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에드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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