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명망가 아닌 전문가를..

 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예고된 개각이지만 발표가 있기도 전에 벌써부터 총리 유임, 비서실장 교체, 사회안보팀 물갈이 등 여러 설이 있다. 이용호 게이트의 불똥이 청와대까지 튄 지금 국면 전환은 물론 나라의 분위기 일신을 위해서도 개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부터 각 부처의 움직임이 부산하고 주요 인사가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이르면 28일 오전, 늦어도 29일엔 전면적인 개각이 단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각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내각이라는 점 못지않게 김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히 인선하는 유일한 개각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일반적으로 임기 말 내각은 차기 대선을 원만히 치러낼 수 있는 무색무취 거국 정부의 성격을 띠지만 이번 개각은 정권 마무리라는 고유업무 외에도 각종 게이트로 이반된 민심을 추스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고 출범하는 내각이어서 사뭇 차별화된다. 한마디로 태평성대의 한가로운 개각이 아닌 ‘전시(戰時)내각’ 냄새가 짙다.

 금명간 뚜껑이 열리겠지만 인선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김 대통령이 누누이 밝힌 대로 국민화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명망가가 대거 발탁될 전망이다. 국민이 자고 나면 터져나오는 권력 실세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판에 청렴하고 누가에게나 존경받는 명망가가 입각해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고 다시 뛰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 절체절명의 과제다. 모쪼록 이 같은 바람이 실현되길 바라는 것은 비단 언론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각의 대원칙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IT 분야 정부 부처에 관한 한 이 같은 명망가 중심의 포진에는 문제가 있다. 일단 IT부처는 여타 사회부처와는 달리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사회적 존경과 권위를 확보한 명망가가 장관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국가통합, 국민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부처와는 특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전세계 경제는 물론 IT 기술 흐름을 꿰뚫어야 하고 이를 우리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 관료조직을 장악, 일사분란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추진력도 갖춰야 한다. 그래서 IT부처 장관은 청렴성, 사회적 명성, 조직장악력 못지않게 소관 업무에 대한 혜안이 필요해 입각 대상자를 고르는 데도 고민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10명이 훨씬 넘는 IT부처 장관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IT 전문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치권 출신이거나 내각의 지역 안배 차원에서 발탁된 인사 혹은 기업 출신 인물이었다. 이들 모두가 임명권자의 의도를 충실히 이행하고 성공한 각료로 자리매김했는지 의문이다. 어떤 이는 관료조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마찰을 빚었고, 어떤 이는 소위 ‘실세’라는 이름으로 박수를 받았지만 ‘일’에 관한 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찌 보면 그나마 오늘의 IT 한국을 있게 한 1등 공신은 주무부처 각료라기보다 대통령의 유별난 관심과 애정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각에서 적어도 IT부처에만은 전문가 내지 관료조직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임기 말 내각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기존 업무를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것이 지상과제라는 점에서 ‘수성형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관의 전문성이 부족해 실무진이 업무 강의(?)부터 할 만한 여유가 없다. 가뜩이나 대선을 앞둔 시점에 관료조직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면 복지부동은 다반사고 여기저기 줄서기에 바쁜 공무원이 활개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을 ‘아는’ 인물이 필수적이다.

 어차피 IT 한국의 그림은 그려졌고 이제는 이를 조용히,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정부 마지막 IT 분야의 과제다. 명망 있는 외부인사도 좋지만 이번 만큼은 정통 행정관료나 이 분야 전문가가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차분히 정리해야 한다. 지금은 나라 안팎으로 ‘안정’이 최우선 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