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민 KAIST교수
‘국가’라는 단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역할은 여러 국책사업으로 나타나고 이뤄지기 때문에 국책사업의 성공정도가 결국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행복도로 연결된다. 국가를 보는 관점은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울타리’일 수도 있고 외부로 향해 나아가는 ‘함대’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책사업의 경영자세도 군림하는 자에서 CEO의 입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작은 나라일수록 ‘울타리’보다는 ‘함대’로서의 경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그러하다. 주식회사의 경영은 결국 주주의 참여와 관심에 의해 원칙이 세워지고 이뤄지며 주주의 이익을 확대해가지만 국책사업의 경영은 기업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책사업 효과의 극대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성만큼은 기업의 이윤극대화 요구보다 더 크고 심각한 것이다. 국책사업을 위해 모은 돈이 잘못 쓰인다면 그 손실은 액면 이상이다. 그리고 그 그릇에 담았던 신뢰와 희망도 같이 무너진다. 따라서 국책사업비를 뜯어먹을 ‘빵’으로 보느냐, 미래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함대의 시동 수단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단순히 서로 알고 통하는 집단끼리 나눠먹기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알알이 희망과 신뢰를 담아 사업비를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2년 새해가 밝았다. 미국·유럽·일본은 물론 중국·인도 등 신흥강국들과 겨뤄 손잡으며 나아가는 당당한 세계 국책사업의 최상급 성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경영원칙과 견실한 경영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책을 세우고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거나 하면 소위 개혁·국제화·초일류란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많은 사업들이 ‘내면’의 개혁·국제화·일류화를 이루는 데까지는 못미쳤다. 무조건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보이려는 근시안적 사고와 조급증은 ‘대충주의’와 ‘억지’ 추진현상을 불러왔다. 극도의 형식주의가 내용과 질을 중시하는 노력을 좌절시켰고 몇몇 언론의 스타는 나왔으나 인프라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연구의 내용이 발전해야 하는데 연구사업의 명칭만 열심히 바뀌고 있다. 공청회·평가회 등 모든 합법적인 절차가 다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의 기획·평가·수행관리에 국가적인 최고수단과 자원이 효과적으로 투여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CEO나 대주주가 그 사업에 붓는 열정과 비전에 해당하는 것이 국책사업 운영에 깃들여 있는가 말이다.
국책사업은 빵이 아니고 시동유다. 가만 두어도 개인기업에서 앞다투어 할 일을 정부가 공을 차지하려 달려들어서는 안된다. 투자회수의 가능성이 낮거나 회수기간이 길고 투자액 요구가 너무 크지만 공익성이 큰 사업 등에 국가가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국책사업의 성공은 기획과 평가에 크게 달려있다.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누구에게 맡기고 몇 년 동안 얼마를 줄 것인가, 어떻게 지원하고 평가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전담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은 기업의 CEO나 이사회와 같은 정도의 책임감과 권한과 인센티브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물론 인센티브의 형태는 주식, 보너스 대신 명예와 도덕심 성취 등 형이상학적인 것이 될 것이지만 국책사업 성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진짜 주인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자나 관련자나 수혜자나 모두 과객이라면 기획과 평가시스템 확립과 운영을 받쳐주는 원칙과 정신이 사람들의 뇌리와 마음속에 살아있고 대대로 이전되며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국책사업의 기획과 평가는 수행 못지 않게 중요하다. 수행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국부적 이벤트지만 기획과 평가는 모든 국책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글로벌 인프라기 때문이다. 기획과 평가단은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전문가로서 공정성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되고 과정과 명단이 필요한 만큼 투명하게 공개되며 충분한 시간과 시간보상하에 운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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