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일본 대중문화 완전 개방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의 게임 강국이다. 특히 엔씨소프트·CCR·넥슨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과 e스포츠 분야는 세계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산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축이 빠져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세계 시장이 아케이드와 비디오 콘솔게임을 양대 축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콘솔 게임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한국에는 비디오 콘솔게임산업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시장논리를 무시한 정부의 정책이 한몫했다.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의 확산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국내에 반입되는 일본 문화상품을 일일이 허가해왔다. 이른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정책을 통해 정부는 일본산 게임의 수입을 철저히 막아온 것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00년 6월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에서 일본산 게임의 국내 수입을 허용하면서도 유독 콘솔게임(타이틀)만은 금지했다.

 이에 따라 소니·세가·닌텐도 등 일본 빅3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정용 콘솔 시장은 한국에서 그 싹을 틔우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X박스’를 내세워 일본이 독점해온 콘솔게임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상황은 바뀌었다. 한국 업체들도 콘솔게임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또한 소니를 비롯한 일본 콘솔 메이저들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산 콘솔 타이틀을 미국산으로 바꿔 출시함에 따라 한국 정부가 쳐놓은 수입 금지의 벽을 우회해 일본산 타이틀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일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한국 현지법인인 SCEK가 내달부터 선보일 계획인 PS2용 타이틀에는 ‘철권 태크 토너먼트’ ‘이코’ ‘마키시모’ ‘오니무사’ 등 전형적인 일본산 콘솔게임이 대거 포함돼 있다. 물론 이들 제품은 ‘USA’로 제조지가 표시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이 허가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인 개방 원칙에 따라 일본산 콘솔게임의 수입을 금지했지만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더욱이 이 조치는 한국 게임업체들이 세계 게임 시장의 3분 1에 해당하는 콘솔게임 분야에서 경쟁력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았다.

 처음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2002년 1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일본산 콘솔게임의 수입 금지는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로 변질돼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방송·음반·영화 등 정부가 일본산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다른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월드컵 공동개최로 한일 양국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상황을 감안하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재고해야 할 시점에 왔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정책을 고집하기보다는 과감히 일본 대중문화를 완전 개방하고 대신 교과서 왜곡이나 정신대문제 등을 해결하는 편이 훨씬 득이 될 것 같다.

 오는 3월로 예정된 한일 양국의 정상회담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협상으로 이뤄진다면 일본 대중문화의 완전개방은 우리 측이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카드임에 분명하다.

 <이창희 문화산업부 차장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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