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를 알려주세요.” “우리 회사는 어떤 강점이 있고, 정부 어느 부처에 솔루션이 채택됐습니다.” “기자님을 만나는 기회만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처음 듣는 기업들의 소박한 사업소개자료. 게다가 기자를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법한 그런 내용의 인사말들.
‘숫자 없는 SK의 벤처투자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이유는 기사가 게재된 월요일 아침부터 날아들기 시작한 메일들 때문이었다.
지난 20일 발표된 SK의 벤처투자 계획에는 숫자가 없었다. 겨우 얻어낸 답변이 ‘지난해 500억원 투자를 고려하면 최소 그 선은 넘을 것이고, 해외 투자를 고려하면 1000억원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SK의 벤처투자 계획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하반기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근거해도 국내 어느 그룹보다 SK의 벤처투자는 앞서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에 걸쳐 받은 메일은 긍정적인 판단근거에도 불구하고 ‘뭔가 속 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벤처들에 심어준 희망의 현실성에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동전의 양면 꼴이다. 대기업은 늘상 ‘마땅한 벤처기업이 없어서’라고 주장해 왔고, 벤처들은 ‘말로만 투자한다’고 대기업을 원망해왔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양비론’이 맞을 듯하다. 몇 건의 벤처 게이트는 벤처 전체를 사기꾼으로 몰기 충분할 정도고, 또 홍보성 자료를 통해 투자 계획만 강조하고 있는 대기업은 부지기수다. 특히 이런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그간 투자가 별 득을 못봐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라는 솔직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쯤에서 SK 최태원 회장의 ‘대기업-벤처 파트너 관계’에 대한 철학을 떠올리게 된다. 대기업이 갖추지 못한 부문을 갖추고 있는 벤처라면 대기업의 파트너로서 동등한 자격을 갖고 제 가치를 인정받지 않겠는가.
협력방안을 묻는 메일이 오늘도 왔다. 숫자없는 투자계획에서도 희망을 찾는 벤처들. SK의 ‘상한선 없는 투자’ 약속이 지켜지기를, 당당한 투자유치를 위한 조건을 갖춘 벤처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할 뿐이다.
<디지털경제부·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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