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1)`문명 利器`도 이용자가 쓰기나름

정릉에 사는 윤모 주부(34)는 최근 남편 친구들을 초대한 집들이에서 변화한 세상을 새삼 실감했다. 동갑내기인 남편부터 시작해 모두의 화제가 인터넷이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내 휴대폰이 좋으니 아니니 하는 등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가사일에 종사하는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 이야기와 가정에 관한 주제가 전부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화제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회사일로도 바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인터넷과 이동전화, 주식의 이야기로 일관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한편으론 인터넷과 무선통신 등의 빠른 속도를 실감하기도 했다. 이제 현실은 ‘코드(code)의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윤씨는 실감했다.

 당황하기는 윤씨뿐만이 아니다. 대개 386세대 이전 세대는 급변하는 정보기술(IT)에 적응하기 힘들다.

 ‘생각의 속도’로 변화하는 IT를 쫓아가기에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그것마저 넘어 ‘의지의 속도(speed of will)’로 치닫는 현실 앞에선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IT는 생활이고 문화이며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나이든 세대에겐 더욱 각박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IT를 정의하는 것에 대해 고리타분하다는 시선을 보낼 정도다. 배우지 않으면 손해보고 소외된다. IT가 거침없이 휘말려 내려가는 ‘급물살’이라면 래프팅을 즐기는 마음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IT를 대하는 마음자세다. 그것이 IT문화고 그 문화에 젖는 방식이다.

 ◇IT문화 ‘질풍노도’의 시대=IT라는 말이 생긴 것은 불과 몇년 전의 일이다. 90년대 초반 정보통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생긴 조어다. 따라서 IT문화의 역사는 짧을 수밖에 없다. 이제 꽃피기 시작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문화의 기초체력이 약하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과 무선통신의 보급은 불과 2∼3년 사이에 이루어진 현상으로 문화가 정착할 여지가 없었다. 10대, 20대가 주류가 된 문화가 IT문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10대가 주류가 된 X세대로부터 시작한 IT문화는 Y세대를 거쳐 n(네트워크)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20대 이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IT문화를 전체의 문화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n세대의 범위가 청소년에서 중장년, 노년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청소년의 전유물로 대표됐던 인터넷이 청장년, 중년층에서 업무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그 사용의 폭과 깊이가 한층 심오해졌다.

 한국정보문화센터 김봉기 소장은 “인터넷이 단순히 정보를 찾거나 게임을 즐기는 차원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의 핵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그동안 IT문화, 인터넷문화는 일부 제한된 계층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으나 이젠 가장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향유하는 문화=실제로 최근 통계에서 나타나듯 국내 인터넷인구는 2300만명을 넘어섰다. 이동전화로 대변되는 무선통신 가입자는 전체 국민의 63%를 넘어선 상태다. 이제 IT문화를 20대 이하 문화라고 정의하기에는 그 폭이 너무 넓어졌다.

 60세가 넘은 노인이 인터넷으로 주식거래를 하는 것이 이제 예삿일이다. 40∼50대 직장인들이 인터넷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설은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인터넷교육이 정규교육으로 자리잡았고, 무선인터넷의 활용도는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IT문화라고 별도로 규정짓기도 힘든 상황이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송관호 사무총장은 “현재는 통신의 주류가 음성에서 데이터로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상태”라며 “음성통신의 한계를 데이터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는 실제 이용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IT문화의 일반화는 생활문화가 IT화돼간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이동전화 보급률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IT선진국으로서 IT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이미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화란 그 시대 중산층의 가장 보편화된 삶의 양식이다. 그렇다면 IT는 이미 보편화된 문화고 IT문화가 곧 일반문화인 셈이다.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가운데 휴대폰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 역시 드물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초고속 통신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선전화는 보급률 100%대를 육박한다. 지역적 차별화도 없다. 읍·면 소재지까지 깔린 광케이블은 IT문화의 도·농 경계를 무너뜨렸다. 광역의 문화로서 IT가 차지하는 위치는 실로 크다.

 ◇돈 벌려면 IT문화와 친해져라=IT가 문화로 자리잡은 데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작용이 크다. 세계 경제의 판도를 변화시킨 기업과 인물을 보면 IT와 무관하지 않다.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체임버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은 IT가 만들어낸 신흥 재벌이다. 이들 기업이나 기업가는 단순히 돈을 벌었다는 차원에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산업을 견인할 것이란 점에서 더욱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기존 산업이 현실을 추수하는 데 주력할 때 IT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렷기 때문이다.

 미래뿐만 아니다. 현실에서도 인터넷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안겨다 주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주식 트레이딩이다. 우리나라 주식거래의 80% 이상이 이미 사이버거래다. 해마다 평균 10% 이상씩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트레이딩은 증권사로서 인력감축이라는 비용절감 효과를 거둬들였고 투자자로서는 수수료 절감이라는 경제적 혜택을 보았다. 양자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대신증권 조경순 홍보실장은 “사이버 거래의 급증은 주식시장에서 일대 혁신이 아닐 수 없다”며 “이로 인해 투자자가 급증하고 거래금액이 커져 전체적인 시장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크지만 반대급부로 데이트레이딩의 극성 등 기업의 가치보다는 단기수익만을 노린 투자자를 양성하는 부작용도 초래했다”고 말했다.

 IT의 확산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인터넷이 가져다준 새로운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를 파는 신종산업인 콘텐츠산업이 파생되고 시스템을 관리해주는 IDC, ASP 등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면서 고용의 기회도 넓혀주었다. IT수출로 인해 IMF졸업이라는 새로운 경제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경제를 이끌 견인차로서의 역할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IT문화는 ‘과유불급’=문화 수용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다. 스폰지 같은 수용력은 어느 문화든 거침없이 수용해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했다. IT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나친 수용은 자칫 ‘함몰’로 몰고갈 수 있다.

 최근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상담건수 1477건 중 인터넷 문제 상담은 6.4%인 91건으로 나타났다. 이미 인터넷이 생활의 지장을 초래하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의 인터넷문제 대부분이 중독증후군이다. 지나친 게임 몰두로 인해 등교거부, 성적저하가 가장 보편적이다. 심지어 학업의지를 상실하는가 하면 게임중독자들의 경우 게임과 현실을 혼동해 모방범죄를 일으키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주부들의 인터넷중독은 주로 채팅으로 이혼에 이르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

 가정문제 상담기관인 한국남성의전화 조사에 따르면 99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외도문제 상담건수 중 인터넷으로 인한 발단이 16.3%에 이르러 인터넷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정만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인터넷 도박으로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은 인터넷 중독을 해고사유로 정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는 사용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지나친 집착은 결국 ‘인간소외’라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사회·경제를 한단계 성숙시키는 문화로서 IT는 도구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가꾸어 나가느냐는 이용자의 몫이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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