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30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i4004’가 등장한 지 오늘로 30년이 됐다.

 i4004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는 PC는 물론 승강기, 에어백, 카메라, 이동전화 단말기, 심지어는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필수 부품이 됐다.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마이크로컨트롤러는 지난해에만 각각 3억8500만개와 640만개가 전세계적으로 판매됐다.

 20세기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 i4004는 그러나 거듭된 우연에 의한 산물이었으며 이 칩의 중요성은 당시 인텔 내부에서조차 깨닫지 못했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i4004가 인텔에 미래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로부터 15년후까지는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다목적 칩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상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전자계산기 제조업체인 부시콤이 69년 4월 당시 메모리 사업에 특화된 인텔과 5개의 신제품에 사용할 커스텀 칩 개발 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i4004 개발의 주역은 인텔의 테드 호프를 비롯해 페어차일드에서 새로 합류한 스탠 메이조, 페데리코 패긴 등 3명이다. 이들은 특정 작업만을 처리하는 기존의 직접 회로와는 완전히 다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 아키텍처 등의 사전 정지 작업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고, 여러 우여곡적을 겪어 완성했다.

 100달러가 안됐던 i4004는 4비트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고 108㎑로 작동했다. 이 속도는 90만달러를 호가했던 에니악에 비해 12배나 빠른 것이었다. 더구나 마음먹은 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기업들은 이 칩에 대해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미니컴퓨터 시장를 주도했던 디지털이큅먼트(DEC)의 프로세서 분석가 나단 브룩우드는 “i4004는 흥미는 끌었지만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인텔은 i4004 이후 단말기 제조업체인 데이터포인트를 위해 72년 4월 8비트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i8008을 내놓았다. 데이터포인트는 계약 말기에 와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칩과 자사가 개발한 명령어 세트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텔에 양도하고 말았다. 데이터포인트가 포기한 명령어세트는 결국 X86 아키텍처의 근간이 됐다.

 74년 등장한 i8080 프로세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 또 다른 기술 돌파를 이루어냈다. 이 칩은 보다 수준 높은 명령어 세트를 가졌을 뿐 아니라 40핀 패키지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기술적 우위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인텔의 i8080은 모토로라의 6800이나 자일로그의 Z80과는 달리 완벽한 개발시스템이 함께 공급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BM이 81년 처음 선보인 PC의 마이크로프로세서로 i8088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당시 IBM은 모토로라와 인텔의 프로세서로 각각 텍사스 오스틴과 플로리다에서 2개의 별도 PC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었으며 진척이 빠른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선택했다.

 머큐리리서치의 최고 분석가인 딘 매캐론은 “만약 두 프로젝트의 운명이 뒤바뀌었다면 우리는 모토로라대 AMD의 구도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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