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정보기술업계 출혈덤핑 지양해야

 정보통신기기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다. 요즘 국내외 전체적인 경기불황으로 사업 실적이 예년만 못한 실정이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기술 개발과 함께 해외 시장 개척에 꾸준히 노력해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동종업계의 상황을 둘러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가격덤핑과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국내에서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강도만 달랐을 뿐이지 대부분의 업계가 이 같은 일을 겪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회사는 한 제품을 앞서서 개발해 지난해 출시한 뒤 목표한 만큼의 납품실적을 쌓아왔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자마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몇 업체들이 우리가 만든 기기와 흡사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업체는 제품 가격을 앞다퉈 싼 가격에 판매했다. 이 제품은 초기 가격에 비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물론 나는 타사들이 제품 가격을 싸게 책정한 것을 무작정 나무라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타사들이 공급하는 제품가격대가 생산원가와 비슷하거나 이를 밑도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수주가격이 낮으면 그만큼 품질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후발 업체들이 제품을 하나라도 더 공급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 가지 못해 모두가 공멸하는 결과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기술 우량업체도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은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웬만한 자금력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적자에 허덕이다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체들의 난립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정보보호산업의 시장 규모가 커지자 국내 참여업체만도 200개사가 넘는다는 것이다. 위성방송 수신과 디지털TV 등에 사용되는 세트톱박스 시장에도 이미 400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이중 위성방송용 세트톱박스 시장에서는 지난 1년 동안에만 70여개 업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입찰이 진행될 때마다 제품 공급업체간 출혈덤핑이 속출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뜩이나 최근 국내외 경기불황으로 업체들의 사업 환경도 나빠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업체들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런 방식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정보기술업계의 과당경쟁을 막고 시장질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업체 자체의 노력과 함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송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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