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정책 우선순위

 ◆윤원창 부국장대우 과학기술부장 wcyoon@etnews.co.kr

 경제불안과 미국 테러사태로 코스닥 주가가 급락하면서 벤처업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고 벤처캐피털사들도 신규 투자는커녕 기존 투자자금 회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렇다 보니 신규 R&D사업은 꿈도 못꾼다.

 유동자금이 부족한 벤처기업들은 공격적 영업으로 돌파구를 찾지만 경기침체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영업이 된다 하더라도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우수인력 이탈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중기청이 ‘옥석가리기’ 차원에서 부적격 벤처에 대한 퇴출에 나서 그간 근근이 회사를 지탱해온 업체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래서인지 1만개라는 벤처기업 수의 화려함과는 달리 현재 4개 중 1개 업체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그러나 한편으론 벤처창업이 줄지 않고 증가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아직 계량화 단계는 아니지만 외환 위기 이후 ‘작지만 알찬’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트면서 대기업들이 기업 분할과 창업 권장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벤처기업을 지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벤처 육성에 적극적이다. 이유는 벤처기업이 성공률은 낮지만 끊임없는 기업 생성과 성장, 그리고 기업분할(spin-off)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데 있다. 지난 한해 동안 창업한 벤처기업이 4400개에 신규고용이 17만명에 달했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벤처업계의 부진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최근 또 다른 벤처지원책을 백방으로 강구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대기업의 출자총액 25% 한도 완화조치를, 5일에는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일련의 조치는 대기업에 투자 활력을 주고 한편으론 코스닥을 통한 자금조달에 숨통을 터줌으로써 벤처업계 자금난 해소와 산업 침체경기를 선(善)순환구조로 가져가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또 당정협의에서 일단 ‘추후 논의’로 유보됐지만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선정한 100여개의 벤처기업에 대해 투자자가 5년간 투자액의 4%를 수수료로 지불하면 기업이 도산하더라도 최고 80%까지 보전해주는 ‘벤처투자 손실보전(이익공유)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기침체, 특히 정보기술(IT)산업의 불황으로 존폐가 걸린 경영난에 당면한 벤처기업에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그만큼 벤처기업협회와 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가 최근 이에 대해 공식 지지입장을 밝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제도의 도입에 반대도 많다. 이들은 ‘고수익 고위험(high risk high return)’을 특징으로 하는 벤처투자에 대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또 아무리 벤처지원이 급하더라도 보험·보증 선진국인 미국에도 없는 벤처투자보험을 만든다는 것은 투자가 자기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는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고 이제 겨우 싹트기 시작한 ‘벤처 마인드를 죽이는 정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뛰어난 로비력을 무기로 부당한 방법에 의해 자금을 끌어다 모은 비양심적인 벤처기업인들이 속출하면서 벤처기업의 투명성이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대상기업을 100여개로 한정해 특혜를 준다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심사의 전문성이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선정 과정에서 또 한차례 잡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물론 이 제도 도입의 타당성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벤처기업을 지원만 한다고 해서 벤처기업이 갖고 있는 현실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벤처에 대한 일반인의 올바른 시각과 평가다. 벤처에 자금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벤처가 육성되느냐 하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번에 마련한 출자제한 완화나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 벤처투자손실보전제도 등이 실시돼 벤처투자가 다시 활기를 띤다 하더라도 벤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평가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 식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 벤처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최근 수많은 닷컴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싸들고 모여들고 있다. 닷컴기업이 몰락하는 상황에서도 ‘실리콘밸리 드림’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를 찾는 게 현재 벤처문제를 해결하는 선결과제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