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테러와 네트워크 효과

 ◆서현진 인터넷부장 jsuh@etnews.co.kr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라도나 함경도 구석구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정부 시책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먹혀들 것이 만무했거니와 통치행위 역시 효율성이 극히 낮았을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하물며 나라 밖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고서는 백성들 대부분은 몇십년 몇백년이 흘러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갔을 터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12일의 미국 대참사는 한마디로 전율, 그 자체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다. 태평양 넘어 나라의 참사 소식을 인터넷과 같은 전자문명에 의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 아니다. 방글라데시쯤에서 대홍수가 났거나 넉넉하게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전쟁을 벌여 수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경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대참사의 충격이 단 한 켜의 여과과정도 없이 이 땅에 그대로 전달됐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참사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는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되는가 하면 증권·금융시장이 요동을 쳤고 적지않은 수출분야가 타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참사소식을 접하는 우리의 입장이 애도를 표하는 제3자의 그것이 아니라 이미 참사의 당사자가 됐다는 얘기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알게 모르게 미국이 짜놓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예속돼왔다는 얘기가 된다.

 익히 알려져 있듯 이 네트워크는 미국에서 재채기라도 할라치면 바다건너 우리나라에서는 감기가 걸릴 정도로 그 성능과 전송속도가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여기에 예속된 나라는 우리나라뿐만은 아닐 터이다. 일본이며 영국이며 심지어 중국과 같은 적대국가도 이미 미국이 쳐놓은 네트워크에 깊숙이 걸려들어 있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지난 10년동안 장기 경제호황을 구가해온 미국 신경제의 힘이 네트워크를 짜는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신경제가 네트워크경제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이번 대참사를 이런 ‘미국식 네트워크 효과’차원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잘 짜여진 네트워크는 오히려 ‘잘 짜여짐’ 그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참사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참사를 빚어낸 테러범들은 단시간에 정확하게 미국 경제의 심장부를 가격하여 유례없는 ‘전과’를 올렸다. 미국의 전유물로만 여겨져왔던 잘 짜여진 네트워크 효과를 거꾸로 이용해서 전세계를 동시에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집중화다. 이것의 속성은 복잡다단하며 이질적인 것들을 일사분란하게 엮어 시스템화하는 데 있다. 집중화가 추구하는 목표 역시 궁극적으로는 비용의 투입은 최소화하고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에 있다. 이 목표를 가능케 했던 기술적 요소가 바로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IT다. 90년대 초반만해도 IT수준은 분산된 소규모 네트워크만을 가능케 하는데 그쳤지만 오늘날에는 말 그대로 미국식 글로벌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배경이야 어떻든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참사는 공교롭게도 10년 호황의 신경제 흐름이 종지부를 찍어가는 시점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면이 없지 않다. 그간의 호황이 네트워크 효과의 긍정적 측면에 기반해서 이뤄진 것이라면 이번 대참사는 그 부정적 측면에 의해 보다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는 더이상 반인륜적이고 반문명적인 테러에 악용돼서는 안된다. 네트워크 효과가 악용되는 것을 견제하고 제거하는 장치를 구현하는 일은 이제 모든 인류의 숙제가 됐다. 다분히 추상적 목표이긴 하지만 현재의 발전속도라면 IT는 이같은 인류의 바람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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