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하이닉스의 지원에 앞서

◆원철린 산업전자부장 crwen@etnews.co.kr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위기가 다시 불거질 모양이다. 2개월 전만해도 1조6000억원의 주식예탁증서(DR)가 성공적으로 발행되면 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회사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DR발행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반도체가격이 회사측의 예측과 달리 계속 떨어지면서 연말에 가면 유동성위기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재정 주간사를 맡고 있는 살로먼스미스바니사는 DR발행당시 반도체(64MD램을 기준)의 평균가격을 개당 2.65달러 잡았으나 지금은 개당 1.6달러로 평균 1달러 정도 낮아 연말에 유동성위기가 재발할 것으로 보고 채권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채권단과 채무를 조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이 심각하기도 전에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인 듯싶다.

 특히 정부나 채권단도 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 위기를 인정하고 지원해 줄 요량으로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하이닉스반도체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반도체수출 격감은 곧바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올들어 반도체가격이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하이닉스반도체가 잘못되면 하이닉스와 지급보증이 얽혀 있는 현대중공업·현대상선·현대상사·현대건설 등이 1조7376억원의 손실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현대그룹과의 관계 속에서 하이닉스를 지원해 주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는 세계 흐름 속에서 우리 경제의 좌표와 맞물려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국내 경제를 지탱하는 D램산업 자체가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세계적인 조사기관들은 올해 D램시장이 어렵지만 내년부터 다시 살아나 D램시장규모가 올해 250억달러, 내년에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규모의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가 단지 한순간 어렵다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미국이 아직까지 자동차산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내던질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는 중국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 일부 전자제품의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임금이 싼 중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면서 제조업 공동화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앞서 있다고 자신하는 IT분야마저 중국이 무섭게 뒤쫓아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경쟁력이 앞서 있는 반도체산업을 한순간 어렵다 해서 포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이후의 미래산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반도체 산업의 역량을 높여 나가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세계 제 3위의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눈치를 보기보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우리경제를 살리는 길이 기업간의 빅딜에 있다면서 반도체빅딜을 추진했던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측은 빅딜성공에 대한 자화자찬만을 늘어 놓았지 정책의 실패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은 적은 없었다. 이같은 정책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측이 점검해 봐야 한다.

 다음으로 하이닉스반도체의 최대주주인 현대그룹이 경영부실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지 회사 경영권만을 내놓았다고 해서 부실경영의 책임이 면해지지 않는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현대그룹은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부실에 책임을 지고 정부지원에 앞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이닉스반도체의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하이닉스반도체는 반도체이외의 사업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했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부터 반도체사업 자체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하이닉스반도체가 1인당 생산성면에서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을 앞서는지, 사업품목중에서 어떤 품목을 가져갈 것인지, 세계 2위에 걸맞은 기업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향후투자는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등을 잘 살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후에 원금상환을 유예하는 등의 과감한 지원이 뒤따라야 하이닉스반도체가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