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정유시장의 다윗과 골리앗

 ◆박상철 한국전자석유거래소(오일펙스) 대표 scpark@oilpex.com

 

 지난해 초 국내 석유시장의 전자상거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유회사, 국회, 정부, 언론,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뜨거운 찬반논란을 벌인 바 있다.

 일개 업종의 전자상거래 시행을 놓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시끄러웠던 사례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왜 석유시장의 전자상거래 도입이 이렇듯 문제가 되었을까. 또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어떤 결과를 파생시켰는가.

 문제가 된 부분은 전자상거래 모델이 곧 투명·공정한 공개시장 개설을 의미한다는데 있었다. 즉 정유 전자상거래는 필연적으로 취급 상품가격 정보의 공개시장을 파생, 기존의 일방적인 공급자 가격결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독과점 시장구조의 부산물인 각종 폐해를 축소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 기득 정유사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안정된 수익구조 아래서 공급자 스스로 정하던 가격결정 체계는 생산과 유통에서의 원가절감 노력 부족, 과도한 가동률을 통한 공급과잉, 그로 인한 덤핑 경쟁, 무자료 불법거래 등의 폐해를 양산해 결국 일반 소비자와 기업, 정유사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그렇다면 석유 전자상거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1년사이 국내 정유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석유 소비자 가격이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크게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유가 인상, 환율 상승, 교육세 인상 등 리터당 수십원에서 수백원까지 각종 인상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과거와 같이 이를 유가에 즉각 반영시키지 못하고 자체 흡수하는 등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자구노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정유회사는 재무구조상의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이는 우리 정유사들의 내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

 둘째로 정유회사간 경쟁심화, 수입정유사 급증, 일반 소비자 및 기업들의 가격 주도권 회복 등이 어우러짐에 따라 수십년간 유지돼 온 정유사 주도의 일방적 가격체계가 양방간 가격협상 구도로 바뀌게 됐다.

 이외에도 불법·부정 유류 유통망의 점진적 축소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이뤄지면서 이제 국내 정유시장의 헤게모니는 몇몇 일부 정유사에서 다수의 일반 수요자에게 넘어오고 있는 양상이다.

 이렇듯 거래정보를 공개해 투명한 시장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만으로도 과거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국내 대형 정유사들은 국회·산자부 등 관련 입법·행정기관에까지 로비력을 행사해 온 ‘골리앗’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은 그들만의 가격정보와 정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를 통한 정보의 공개라는 ‘다윗’을 통해 우리는 소비자 주권을 찾을 수 있었으며 정유사 역시 내부 역량강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향후 석유시장에 있어서의 정보공개를 통한 시장변화 노력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돼야 한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의 석유소비량이 세계 소비의 17%를 차지하는 주요 석유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싱가포르 시장(SYMEX)의 영향력 아래 놓여져 있어 상대적으로 많은 불리함을 감수해 왔다. 이 또한 아시아 시장의 일부 소수세력이 석유 및 금융을 연계하는 고급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이 역시 동북아 정유시장의 전자상거래 도입을 근간으로 한 정보의 민주화를 통해 굴절된 패권주의를 혁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전자상거래를 기반한 시장정보 공개는 왜곡된 유통시장의 질서를 개선시킬 수 있다. 특히 부당한 가격조정이나 담합행위가 이뤄지는 시장에서의 그 위력은 더욱 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1년간의 국내 정유시장의 변화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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