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나무만으로 숲을 이룰 순 없다

페루 중부의 파스코주는 크게 동부와 서부로 나뉜다. 서부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동부는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어 울창한 숲이 많다. 이곳은 기름진 평야와 대광산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파스코의 주도인 세로데파스코에서는 세계의 은 수요를 도맡다시피 했다. 파치테아강을 끼고 있는 넓은 평야는 깊은 숲 덕분에 많은 곡식을 생산한다.

 숲은 비옥한 토양이 아니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생명력은 나무와 곤충 그리고 그속에서 사는 동물과 자연에서 비롯된다. 나무만으로 숲을 이룰 수 없고 곤충과 미생물만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쓰러진 나무에 이끼와 지의류가 자리를 잡아야 어린나무와 관목이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나무만으로는 가로수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진시왕은 전용 도로를 만들고 자신의 그늘을 만들기 위해 길 양편에 소나무를 심었다 한다. 인류 최초의 가로수가 소나무였던 셈이다. 서양에서 가로수가 심어진 것은 16세기께였다. 1537년 빈의 프라터공원에 조성된 밤나무 길이 최초였다. 이후 가로수는 진시왕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조성되고 사라졌다.

 그러나 숲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강이 범람하고 태풍이 불어도 숲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자태를 뽐낸다. 그 때문인지 숲은 산업과 인프라에 자주 비유된다. 곤충과 동물과 자연이 함께하지 않는 나무만으로는 산업을 일궈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산업계를 들여다보면 숲은 없고 나무만 즐비한 것만 같아 안타깝다. 관련 정책은 오락가락하고 영화·음반·비디오·게임업계는 큰나무 그늘 아래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특히 영화계는 요즘 영화가 없다고 한숨이다. 특정 작품이 스크린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러다가 자칫 ‘편식’으로 말미암아 영화계가 굶주리고 병들고 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해 있다.

 비디오업계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대작이 아니면 참패일 뿐이다. 이른바 업계의 채산성을 보전해 줄 ‘중박’작품을 찾아 볼 수 없다. 고육지책으로 내놓고 있는 수익금분배제(RSS) 시행도 겉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DVD 타이틀로 승부수를 둬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는 있지만 이것마저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음반 반세기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음반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연가’ ‘온리 러브’ 등 이른바 편집 앨범의 범람으로 시장이 와해 직전에 있다.

 디지털콘텐츠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임업계의 현실도 별반 차이가 없다. PC게임을 보면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류의 게임만이 양산되고 있고 온라인게임은 ‘리니지’ ‘포트리스2’ ‘바람의 나라’ 등 세 작품이 전체 시장의 80%를 점하고 있다. 아케이드게임은 규제의 틀에 묶여 옴짝달싹을 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다.

 이 모든 게 숲을 바라보지 않고 나무만 올려다봤기 때문이다. 좋은 묘목과 나무를 발굴해 키워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무 몇그루만으로는 강의 범람과 홍수를 막을 수 없다.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스크린에 올려져야 하며 편집앨범·댄스 음악이 된다 하여 그 장르만 양산돼서는 곤란하다. 전략시뮬레이션게임과 롤플레잉게임만 있는 PC게임산업이라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잔디를 심어야 한다. 곤충과 미생물이 살아 숨쉬고 자연이 움틀 수 있는 숲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로수의 운명을 비켜갈 수 있고 홍수에 견딜 수 있다.

 기름진 땅과 깊은 숲을 만들기 위해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힘있는 사람’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혜를 짜내야 한다.

 큰 나무 그늘이 숨을 돌릴 수 있게는 하겠지만 결코 숲을 이루진 못한다는 사실을 문화 산업계가 알았으면 싶다.

◆모인 문화산업부장 inm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