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e비즈니스 바로보기 1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외친 역사학자 대니얼 벨 이후 이념에 관한 녹록지 않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중견 사학자 임지현 교수가 최근 발간한 ‘이념의 속살’이 바로 그것이다. 속살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이 책에서 이념의 허구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념의 가장 큰 과오는 이념의 잣대에 억지로 세상을 꿰맞추는 것이라고 통박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듯이 사람의 키를(세상이나 현실)을 침대(이념이나 콘셉트)에 맞게 재단하는 식이다. 언뜻 황당하게 보이지만 이념의 오류나 콘셉트의 장난이 판치는 곳은 이외로 많다.

 인터넷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로니컬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수년전부터 전세계를 인터넷열풍으로 몰아넣은 주역은 콘셉트싸움이라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털과 B2C으로 시작해 B2B을 거쳐 ASP·P2P·웹에이젼시·C2C·m커머스·t커머스 그리고 최근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상거래가 가능하다는 u커머스까지. 우리가 불과 1∼2년 사이에 익숙하게 들어온 용어만도 수십개에 이른다.

 오프라인 기업들을 압박하는 e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e프로큐어먼트·MRO·e마켓플레이스·EAI 등 한마디로 콘셉트의 홍수다. 어떤 용어가 인터넷시대를 아우르는 것 같아 따라가면 3∼6개월 사이에 이 용어는 올드패션이 되고 또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 헉헉거리며 따라가야 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진행돼온 인터넷 혁명의 실체다.

 궁금한 것은 이같은 콘셉트를 누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느냐다. 대부분은 컨설턴트, 마케팅전문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들이라는 것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결국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는 시스템이나 솔루션, 컨설팅 등 그들이 팔아야 할 것들을 수요자들이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콘셉트를 새로운 용어로 포장하거나 아예 실현성 없는 콘셉트로 현실을 재단하려는 과오다. 이것은 또 정작 인터넷시대를 앞당기기보다 구세대(오프라인기업)들이 인터넷에 다가가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특정용어나 개념의 뜻을 정확히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왜 e비즈를 해야 하는가는 이제 우문이 돼버린 세상이지만 정작 e비즈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흔히 전문가라는 이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벤더가 생각하는 e비즈와 구매자인 일반기업들의 시각이 크게 다르다. 특히 유저들도 자신이 e비즈를 도입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대답도 엇갈린다.

 가장 흔한 오해는 비즈니스와 업무 프로세스과정에서 온라인 비중이 많으면 e비즈라는 생각과 무조건 새로 나온 솔루션이나 시스템을 도입하면 e비즈를 다했다고 인식하는 양태들이다. 실제로 경영현장에 있는 상당수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정작 정보화와 e비즈니스의 차이점을 잘 모른다. 심지어 정보화담당관(CIO)들조차 개념을 못잡고 헤매는 실정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언뜻보면 정보화나 e비즈니스나 자사가 소유한 리소스를 정보기술(IT)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최적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간 기업내부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정보화)을 기업 외부 곧 비즈니스 파트너나 고객에까지 확대한다는 개념이 강조된다. 공급자 위주에서 고객 중심의 시장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구매에서 생산·영업·고객관리까지 전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묶는 작업이다. 여기에 정점을 이루는 것이 바로 전자상거래(EC)다. 굳이 외부와의 전자상거래가 없다면 내부 정보화수준에 그쳐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인터넷이라는 그물로 비즈니스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네트워크화 돼 있다. 내가 하기 싫다고 외딴 섬으로 존재하기는 힘든 세상이 됐다. 이 새로운 환경의 핵은 그간 우리가 중시해온 국가나 기업이 아니고 글로벌이다. 경쟁력의 중심도 우리가 익숙한 관리와 제품이 아닌 고객·마케팅·정보 등이다.

 따라서 전자상거래를 전제로 e비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기반으로 경영전략의 재조정, 업무 혁신의 방향, 시스템 기술의 적용 등을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진행된 우리의 e비즈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기업은 이처럼 살을 깎는 업무혁신보다는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외국의 선진 솔루션을 도입하는 식의 외면적인 변화에만 치중해온 게 사실이다.

 머리는 변하지 않고 이것저것 도입해 정작 움직여야 할 손발만 잔뜩 무겁게 하는 형국이다. 전면적인 사고의 전환없이는 콘셉트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의 모든 변화가 인터넷이 존재하기에 가능하겠지만 역으로 현재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툴을 찾다보니 인터넷이 탄생했다는 표현도 그리 틀리지 않다. 인터넷은 바로 수단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터넷의 대단한 기술적 요소에 집착할 경우 정작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e비즈니스에서 자유로워지자.

 

  김경묵 디지털경제부장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