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디지털콘텐츠와 소비자보호

◆박재성 논설위원

 지난해 이맘때 세계적인 방송망을 지니고 있는 CNN에 재미있는 뉴스가 보도됐다.

 사건은 유명한 경매사이트인 미국 이베이(e-Bay)에 그림 한 장이 매물로 나오면서부터 비롯됐다. 처음엔 단돈 25센트로 경매가 시작됐는데 11일 동안 가격이 계속 치솟아 무려 13만5805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낙찰받은 사람이 그 그림을 받아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붓으로 그린 그림(페인팅)이 아니라 단순한 복사물(프린트)이기 때문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림 값으로 우리 돈으로 무려 1억원을 넘게 치렀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 그림을 유명한 화가의 그림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각계에서 다양한 반응이 일어났다.

 먼저 아무 가치없는 물건이 그렇게 고가에 경매가 이뤄진 데에는 경매사이트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한편으론 신문이나 방송 등에 실리는 광고 내용이 사실과 달리 과장이나 허위일 때 그 책임을 신문사나 방송사가 지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반론이 뒤따랐다.

 또 경매에 가담하는 소비자가 주의를 덜 기울였기 때문에 자업자득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아마 이같은 해프닝은 그것이 경매였고 또 실제의 장소가 아닌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을 것이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이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자는 소비자 당사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도 직접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피해를 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이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져 그 이용을 기피하는 심리가 생기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전자상거래나 디지털콘텐츠 서비스 등의 거래 규모는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수십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그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이버 거래나 서비스는 물류 비용이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거래 규모가 큰 만큼 소비자들의 피해나 불만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디지털콘텐츠 서비스 피해로 인한 상담건수는 올해 지난해보다 50%나 늘었다고 한다. 서비스가 끊기는 장애에서부터 심지어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사이트를 폐쇄하고 이용하지 않은 요금을 청구하는 등 사례도 다양하다.

 이런 일이 빈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다면 이러한 산업도 발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은 인터넷의 보급 못지않게 소비자 보호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 3월 “회사가 고객의 개인정보를 팔지 않겠다는 계약을 했을 경우 파산할 경우에도 개인정보를 팔 수 없다”는 내용을 민법 개정안을 삽입키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안이 주목을 끄는 것은 사업자가 극한 상황인 파산에 이르면서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다른 회사에 넘기지 못하게 하면서까지 소비자를 철저히 보호한다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구제나 불편사항을 신고할 수 있는 센터를 벌써 수백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소비자보호원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디지털콘텐츠서비스 이용 표준약관’ 도입과 ‘소비자피해보상 기준’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앞선 것으로서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본처럼 소비자 피해구제나 불편사항을 신고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일부밖에 없는 실정이다.

 건전한 소비자 없이 사업자가 있기 어렵다. 적어도 사이버 세계에서는 소비자 보호와 사업자 보호가 제로섬게임은 아니다. 소비자 보호는 그것이 지나쳐 사업자에게 가혹하지 않다면 사업자에게도 득이될 뿐 아니라 산업 발전에도 밑거름이 된다. 이제 우리 정부도 전자상거래나 디지털 콘텐츠 산업 육성도 좋지만 소비자 보호에도 한층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j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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